최교진 세종특별자치시교육감

지난 5월, 세종시 각 학교에서 학생급식을 담당하는 10명의 영양교사가 모였다. 급식단가를 얼마로 해야 할지를 정하는 회의였다. 우리 아이들에게 안전한 식자재로 먹음직한 음식을 만들어 주려면 얼마나 단가를 올려야 할지를 가늠하는 회의였다.

영양교사들이 예산제약 없이 식단을 짜서 계산해보았다. 영양교사들이 요구하는 급식단가 인상률은, 94%, 44%, 68%, 74% 등 대부분 60% 내외였다. 이 정도는 되어야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고 먹음직한 식단이 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

현재 2,000원에서 3,000원 수준인 급식단가를 가지고 영양교사들은 매일매일 씨름을 하고 있다. '예산 부족' 때문이다.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 학교 납품용 의자와 책상은 어른들이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의자와 책상보다 훨씬 낮은 가격과 품질의 제품이다. 학교 건축단가는 교도소 건축단가보다 낮다는 통계도 있었다.

세종시의 해밀 유·초·중고등학교가 ‘그래도 잘 지은 학교’라고 한다. 이 학교를 지을 때 설계를 했던 유현준 교수가 제안했던 것을 줄이고 줄여서 지었다. 그래도 교육부가 지급하는 건축비보다 30%가 더 들었다. 교육부가 주는 돈으로는 그런 학교는 지을 수 없다. 우리 기재부, 교육부는 이렇게 저가 저품질의 학교 시설과 교육 설비를 당연시한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기르는데 너무 인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낮은 품질, 적은 수량, 싼 가격에 길들다 보니 학교에서 좋은 것, 많은 것, 비싼 것은 상상하지 못한다. 지난 수십 년간 그렇게 살림을 살아왔다. 왜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것, 비싼 것을 넉넉하게 주면 안 되나요? 그 돈을 아껴서 무엇을 하려고 그러시나요?

콩나물 교실 하나도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우리가 가입한 OECD 30개국 중학교 학급당 학생 수 통계에서 우리는 거의 꼴찌인 24위다. 상위 10개국 학급당 학생 수는 초등 17.8명, 중학교 19.2명인데, 우리는 초등 23.1명, 중학교 26.7명이다. 속상하다.

보통 학급당 학생 수 통계에 23명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학생의 절반은 23명 이하의 학급에서 공부한다고 생각한다. 이 통계에 숨은 비밀이 있다. 우리나라 통계에는 학급당 최대 6명인 특수학급과 시골의 소인수 학급이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는 우리나라 학생의 80%가 21명 이상의 과밀학급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것을 줄여달라고 학부모단체와 교원단체가 학급당 학생 수 20명 이하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 20명 이하가 되어야 담임교사와 교과담임이 제대로 수업을 할 수 있고, 뒤처진 아이들을 살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규모가 되어야 담임교사가 학생들을 제대로 관리해서 학교폭력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예산이 없어서 못한다’라고 한다.

교사들의 정원은 행안부가 꽉 쥐고 있다. 물론 기재부가 돈줄을 쥐고 있으니 결국 기재부와 행안부가 통제하고 있는 셈이다. 세금이 늘어서 교육예산이 늘었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때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까지 부담시키던 시절보다는 시도교육청의 살림이 늘었다.

그러나 교원정원을 통제하다 보니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일 수 없다. 겉으로는 예산이 늘었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가장 중요한 교육환경 개선은 꿈도 꾸지 못한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놓고, 기재부는 ‘교육청에 돈이 남는다’라고 말한다.

학급당 학생 수를 줄여서 기초학력을 보장해야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에 25명을 수용해놓고 기초학력을 책임지라고 하기 어렵다. 학교에서 채우지 못하는 것을 학원으로 가서 채우라 할 수 없다. 학교에서 기초부터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손길이 필요하다.

학급당 학생 수 20명은 우리 교육계의 오랜 숙원이다.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는 지금이 적기이다. 이제 교육은 양이 아닌 질을 생각해야 할 때이다. 우리 학부모들이 사교육을 통해서 보충해야 하는 그 학력은 공교육기관인 학교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아이들의 학습환경이 대폭 개선되어야 한다. 그런데, 기재부는 지금 우리의 교육환경을 개선하려는 것보다는 산술적으로 학생 수가 줄어든다고 교육예산을 줄이겠다고 한다. 이런 낙후된 교육환경을 그대로 두겠다는 말이다.

세종특별자치시교육감인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 세종특별자치시교육청은 기재부와 행안부의 교육예산 축소, 교원정원 감축, 과밀학급 유지 정책을 수용하지 않겠다.

10대 선진국에 태어난 우리 아이들을 세계 30위 수준의 교육환경에서 공부시킬 수 없다. 절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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