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수 ETRI 기술상용화센터장

'미라클 벨리에'라는 프랑스 영화가 있다. 프랑스 영화는 왠지 낯설다. 소피 마르소가 주연한 '라붐'이나 장 르노의 '레옹', 아니면 '택시' 정도가 기억날 뿐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청각장애인 가족 이야기를 담은 코미디 영화다. 흔히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달콤한 로맨스 영화나 블록버스터와도 거리가 멀다. 그런 영화가 2014년 12월 모두의 예상을 깨고 프랑스 박스 오피스에서 3주 연속 1위에 등극하며 733만이라는 엄청난 흥행에 성공했다.

최근에는 '코다'라는 미국 영화로 리메이크까지 돼 지난달 말에 개봉됐다. 도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영화에서 등장한 청각장애인 가족은 프랑스 시골에서 가축을 키우고 치즈를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파는 일을 한다. 주인공인 폴라는 청각장애인 가정에서 유일하게 듣고 말할 수 있는 딸이다. 일반 사람들과 가족들이 소통하는 일을 전담하다시피 하지만 가족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고 가족에 대한 자부심 또한 강하다. 그런데 얼떨결에 합창부에 들어갔다가 자신에게 숨겨진 노래 실력이 빛을 발하게 되고 이를 알아본 선생님은 파리로 가서 오디션을 볼 것을 제안한다. 문제는 오디션에 합격하면 파리에서 대학진학의 기회도 주어지는데 이렇게 되면 가족과 헤어져 파리에서 혼자 살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갈등이 시작된다. 부모와 동생은 청각장애인인 가족을 대신해서 귀와 입이 되어준 그녀가 집을 떠날 수 있다는 게 너무도 힘겹게 다가온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데 왜 이렇게 하려는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급기야 청각장애가 있는 자신들이 싫고 부담스러워 떠나는 것이 아닐까 오해하는 지경에 이른다. 반면 선생님은 폴라가 이렇게 뛰어난 재능을 숨기고 사는 것이 옳지 않다며 끊임없이 파리 오디션에 참가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그 사이에서 주인공 폴라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안절부절못한다.

직업병인지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기술창업과 오버랩 됐다. 아니 너무도 똑같았다. 모든 것이 연구자가 창업을 꿈꾸거나 시도하려는 순간 벌어지는 일들이다.

창업자가 소속된 연구기관의 동료 중 일부는 "연구기관은 국가경제발전에 이바지할 기술을 개발하는 곳이지 창업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 아니라며, 너는 이곳에서 꼭 필요한 연구개발자인데 무슨 창업을 하려고 하느냐?"라며 말리기 일쑤이고, 가족들은 "왜 그 좋은 연구소를 나와 언제 실패할지 모르는 그 위험한 창업을 하려고 하느냐고, 가족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지 걱정은 하는 거냐?"며 푸념을 쏟아 놓는다. 반면 재능있는 연구자의 기술창업이야말로 출연(연)의 개발기술을 조기에 성공적으로 사업화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아는 창업지원 전문가들은 이런 머뭇거림 속에서도 재능있는 연구자들에게 끊임없이 창업을 설득한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갈등이 창업하는 거의 모든 이들에게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어떻게든 정리되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긴 갈등의 시간을 끌다 지친 끝에 다시 연구실로 돌아가기 일쑤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쩌면 영화에서 폴라의 아빠가 그녀에게 했던 행동에 답이 있을지 모른다. 즉, 그녀에게 다시 다가가 귀를 딸에게 가까이 대고 노래를 들려 달라며 비록 완벽히 들을 수 없더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뒤로하고 오직 그녀의 재능만을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포기하려 할 때 그의 가족을 설득해 함께 파리의 오디션 장소에 데리고 가서 진심을 담아 응원하는 것이다. 이처럼 관심의 전환과 응원이 있을 때, 갈등 사이에서 주저하던 한 사람의 인생에 참다운 비상(飛上)이 일어난다. 연구자에게도 이런 관심과 응원이 필요하다. 폴라가 오디션장에서 부른 노래 가사처럼 "그녀는 사랑하지만 떠나는 것이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날아오르는 것, 비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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