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수필가

한줄기 불어오는 바람결에 흔들리는 작은 종의 울림이 청아하다. 종소리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벌써 내 가슴 한쪽에서는 선들바람이 지나간다. 유난히도 더웠던 여름날의 상흔이 아직 남아있건만 입추와 처서가 지나니 가을 안으로 감성이 먼저 들어가 앉았나 보다. 칠월 여드레, 내 생일만 지나면 밤마다 화려한 은하수 별빛이 땅에 내리고 벼 이삭이 여무는 가을로 접어든다던 엄마의 말씀이 오래전 옛날이야기처럼 아득하다. 가을이란 단어만 떠올려도 왜 마음은 뜬금없이 서글퍼질까.

자식들의 효성으로 차려준 풍성한 생일상을 받은 것이 엊그제건만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나를 흔들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며칠째 휘청대고 있는 걸 또 가을 앓이라 해야 하나.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에 만삭의 어머니는 칠석날 밤 은하수를 보며 더위를 식히다 다음날 어둑새벽에 나를 낳으셨단다. 삼복더위에 몸을 푸셨지만, 맏이로 아들 하나 낳고 내리 딸 셋 낳다가 넷째마저 또 딸을 낳은 죄로 산후 몸조리는 언감생심이었다 하셨다. 할 수만 있다면 아들로 다시 만들어 놓고 싶더라며 그 당시 애절했던 심정을 내 생일만 되면 우스갯소리처럼 흘리셨다. 다행히 사 년 뒤 내 밑으로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어머니의 한도 조금은 풀렸고 나도 그제야 사내 동생을 본 복덩이란 말을 할머니께 들 수 있었다.

어린 날엔 왜 그리도 생일을 손꼽아 기다렸는지. 새해 벽두에 달력이 벽에 걸리면 제일 먼저 생일을 찾아보고 몇 달을 기다려야만 맞이하는 생일날이 너무 멀다며 투정하기도 했었다. 엊그제 같던 철부지 시절에 그리도 손꼽아 기다리던 생일이 그새 참 많이도 지나갔고 투정 부릴 어머니, 아버지도 이젠 너무 멀리 계신다.

천덕꾸러기인지, 복덩이인지 이십여 년 전 어머니가 하늘길에 오르시기까지 육 남매 중 가장 오랫동안 곁에서 살던 탓인지 칠월 여드레가 가까워지면 그리움의 허기를 느낀다. 자식들이 차려주는 생일상이 풍성할수록 어머니의 손맛이 그립고 젖내나던 품 안이 그립고 그립다. 날 낳으신 날, 몸조리도 못 하고 눈물 바가지로 허기를 때우셨을 어머니께 단 한 번만이라도 뜨끈한 미역국 한 대접과 쌀밥 한 사발 해드릴 수 있다면 지금의 허기가 잠잠해질런가. 세월 따라 모든 것이 잊히고 변해간다 해도 어머니의 손맛과 품 안의 안락을 어찌 지울 수가 있으랴. 어느덧 그 시절 어머니의 연륜이 되어 입맛이며 몸짓과 솜씨까지 닮아가면서도 되돌릴 수 없는 지난 시간을 지우지 못하고 기억 언저리를 서성대는 아직도 야물지 못한 막내딸이다. 여지없이 올해도 어머니를 향한 사모의 마음을 가을 앞에 또 먼저 꺼내 본다. 가을은 언제고 애달픈 계절로 내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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