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호 충남소방본부장

1960년대 강원도 산골마을을 배경으로 순수한 로맨스를 담아낸 영화 ‘내 마음의 풍금’에는 눈에 띄는 장면이 있다. 학예회를 준비하던 중에 불이 나 모두가 발을 동동 구르던 중에 소방대원들이 출동했다. 그러나 소방차는 보이지 않는다. 요즘에는 소방차가 없는 소방대를 상상할 수도 없지만 그 당시에는 그랬었다. 당시 소방차는 소방서가 설치된 대도시 지역에서나 볼 수 있었고 시골 마을에는 주민으로 구성된 의용소방대에 완용(腕用)펌프만 있었기 때문이다. 완용펌프는 ‘팔 완’자를 사용하는데 팔의 힘으로 작동하는 수동식 펌프라는 의미이다. 소방차 대신 이 영화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완용펌프다.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화재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니겠지만 소방관인 필자의 눈에는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당시 소방대원들의 복장이나 장비의 사용법에 대해서 철저히 고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작가와 감독에게 고맙다는 마음이 들었다.

완용펌프는 17세기경 서양에서 발명됐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는 관상감의 관원으로 중국 청나라에 사신 일행으로 갔던 허원(許遠)이 1723년에 수총기(水銃器)라는 이름으로 처음 들여왔다. 당시에는 궁궐에만 수총기를 배치했는데 이런 기계식 소방 장비가 전국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개항 이후부터다. 일제강점기에는 자동차에 펌프를 장착한 소방차가 도입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소방 장비는 수동식이 주류였다. 동서양 모두 완용펌프를 사용했었지만 1900년대 초 소방차가 보급되면서 점차 완용펌프는 박물관의 전시품이 되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정이 달랐다. 1980년대까지도 사용한 것이다. 한국전쟁으로 소방력이 모두 파괴되었지만 매일 끼니 걱정을 해야 했던 곤궁한 상황에서 고가의 소방차를 수입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미군으로부터 중고 군용트럭을 인수받아 소방차로 개조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었다. 급기야 외국 소방에서는 이미 단종된 완용펌프를 1954년 국산화했고 내무부 인증을 받아 양산을 시작했다. 1962년 5월 모내기철에 전국적으로 극심한 가뭄이 든 적이 있었다. 이때 논에 물을 푸기 위해서 내무부가 동원한 완용펌프가 947대였으니 주력 소방 장비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후 1977년부터 국산 소방차가 생산되기 시작했지만 완용펌프는 1990년대가 되어서야 고단했던 100여년간의 근무를 마치고 소방차에 완전하게 임무를 인계할 수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다양하고 많은 수의 완용펌프를 보유한 국가 중의 하나가 된 것에는 이런 역사적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보다 30년 이상 긴 세월 동안 완용펌프를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 일에 연연할 필요는 없겠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던 과거를 기억하고 되새기는 것은 현재의 고통을 이겨내고 강한 미래를 약속하는 백신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완용펌프는 단순히 옛날 소방 장비가 아니라 힘들고 고단했던 시절을 상징하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지금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있지만 반드시 이겨낼 것이다. 그리고 이 어려움의 기억은 우리가 더 건강한 미래를 살아가는 데 정신적인 백신이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소방차 수출국이 되었고 개도국에는 소방차를 무상 기증할 수 있을 정도로 급성장했지만 그 뒤안길에는 오랜 세월 우리와 애환을 나누었던 완용펌프가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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