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태 대전 서구청장

19세기 독일 베를린의 미테 지역에는 양조장이 들어섰다. 냉전시대 이 양조장은 동독 군인들이 장벽을 감시하는 망루로 쓰이기도 했다. 관련 산업은 쇠락했고 양조장은 폐쇄됐다. 2011년 베를린 주 정부는 리모델링을 통해 스타트업을 위한 사무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젊은 스타트업 창업자와 예술가들에게 싼값에 공간을 제공하고 대출 혜택을 주면서 인재를 끌어모았다. 독일을 넘어 유럽을 선도하는 스타트업의 산실 ‘팩토리 베를린’은 그렇게 탄생했다.

미국 시애틀의 ‘아마존 캠퍼스’도 활력을 잃은 구도심을 젊은이들의 아이디어가 살아 숨 쉬는 혁신 공간으로 변신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아마존 캠퍼스는 시애틀 도심 내 낙후된 창고시설 등이 밀집한 지역에 건설됐다. 사무공간을 확충하고 접근성을 개선해 글로벌 첨단 기업이 입주하는 혁신지구로 탈바꿈했다. 그 결과 아마존을 시작으로 중소 IT 기업이 모여 지역 생태계를 만들었고 구글, 페이스북, 애플, 트위터 등의 기술본부도 모여들었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경남 통영의 경우 문 닫은 조선소 건물을 리모델링해 창업 지원공간인 ‘통영 리스타트 플랫폼’을 개소했다. 총 6층 건물은 이벤트 홀과 소통공간을 비롯해 창업 공간과 교육장, 창업지원 공간으로 활용된다. 부산시는 50년 된 사상공업단지의 한 폐공장을 기부채납 받아 스마트 혁신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사업에 착수했다. 폐공장의 벽돌 외관은 보존하고 내부만 리모델링해 복합문화센터와 첨단 제조 및 지식산업센터로 조성한다는 복안이다.

며칠 전 대전에도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서구 월평동의 옛 마권장외발매소(한국마사회 대전지사) 건물이 글로벌 혁신창업의 허브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대전시는 지난 23일 한국마사회,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글로벌 혁신창업 성장 허브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매매계약을 위한 행정 절차와 대전시의회의 동의 절차 등이 마무리되면 내부 리모델링 공사와 창업 기업 모집 등을 거쳐 2023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에 들어가게 된다.

마권장외발매소 영업 중단으로 상권 침체 장기화와 도심 공동화를 걱정했던 주민들은 일단 안도의 숨을 쉬게 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가뜩이나 힘든 지역 소상공인들이 더욱 힘들어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대전시와의 공동매입 등 다각적인 해법을 모색했던 서구의 입장에서도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특히 글로벌 혁신창업 성장 허브 조성을 통해 KAIST의 과학기술 기반의 혁신 역량이 서구까지 확산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역민들에게 마권장외발매소 건물은 애증의 대상이었다. 지상 12층 규모의 건물은 번창했던 월평동 상권의 중심이자 상징이었다. 반면 화상경마장이 사행성 시설로 인식되며 지속적인 민원의 대상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한국마사회 대전지사 건물은 대전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동안 공존했던 빛과 그림자, 기대와 우려를 모두 녹여 이제 하나의 숙제에만 전념해야 한다. 숙제의 질문은 하나다.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가?

이제 첫 걸음을 내디뎠다. 갈 길이 멀다. 팩토리 베를린, 아마존 캠퍼스가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함께 머리를 맞대 해법을 찾는다면 한국의 ‘팩토리 대전’, ‘월평 캠퍼스’라는 이름을 붙여도 손색없는 때가 오리라 믿는다. 서구에 글로벌 혁신창업 성장 허브를 구축하는데 서구도 모든 역량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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