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별 경쟁률 하락·정원 미달사태에 오로지 ‘입학률 상승’ 초점
비즈니스·에너지·바이오 등 단어 접목해 학과 새로운 목표 제시
국문학·영문학 등 순수학문 자취 감춰… “대학 특수성 잃을 수도”

[충청투데이 최정우 기자]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과별 경쟁률 하락, 정원 미달사태로 ‘1명이 아쉬운 시점’에 이르자 지역 대학들이 오로지 신입생 유치를 위한 학제개편에 나서고 있다.

해마다 급변하는 직업트렌드 및 향후 유망직업에 대한 기대치로 학부·학과를 교묘하게 개편해 '신입생 입학률 상승'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4일 본보가 지역 대학들이 학제개편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 대학들이 해마다 향후 유망 직업에 대한 특성학과 신설 및 기존 취업률이 저조한 학과들을 통폐합 시키는 학제개편을 실시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비즈니스’, ‘에너지’, ‘바이오’, ‘글로벌’, ‘빅데이터’ 등 단어를 접목시켜 전문성을 강화함으로써 학과의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실제 A대학의 경우 영어언어문화전공을 비즈니스영어학과로, 중국언어문화전공을 비즈니스중국어학과로, 빅데이터사이언스학과를 빅데이터학과로 전환, 올해는 디지털헬스케어학과를 신설했다.

또 다른 대학들은 국악과를 한국음악과로, 대중음악전공을 K-pop전공으로, 에너지공학과를 친환경에너지공학과로, 반도체장비공학과를 글로벌반도체공학과로 개편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올해 ‘인공지능’, ‘메타시티’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자 일부 대학에서는 인공지능소프트웨어학과, 지능미디어공학과 등을 신설하거나 학부를 학과로 개편(미래기술학부→AI·빅데이터학과)하는 등 변화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일부 학교의 경우 학제개편 이전과 이후 교육과정에 따른 학년별 전공과목의 커리큘럼의 변화가 없이 해마다 신입생들을 맞이해 재학생과 신입생이 혼선을 빚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역사성과 정통성을 유지해왔던 학과 및 학부도 사라지고 있다.

오랫동안 대학의 터줏대감 역할을 맡아오며 정통성을 유지해왔던 국문학, 영문학, 경영학, 경제학, 건축학, 토목학 등 학문들도 서서히 자취를 감추며 신입생을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A대학의 특수성을 강조해왔던 호텔경영·관광경영·글로벌문화학과는 글로벌호텔경영학과로 통합, B대학의 영어영문학과는 글로벌비즈니스영어전공으로 경제학과는 글로벌경제학과로 학제를 개편했다.

C대학의 국어국문학과는 진통(통폐합) 끝에 국어국문한국어교육과로, 정치외교학과는 정치언론안보학과로 학과명이 바뀌었다.

이에 지역 대학가는 학제개편이 단순한 성과 문제가 아니라 대학 자체의 생존 영역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지역 A대학 관계자는 “학제개편은 대학 자체 결정이 아니라 정부, 시장 등 복잡한 이해관계에 맞춰 생존이라는 목표 아래 학교 전체가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라며 “현재 시장, 즉 대다수 시민들이 받고 싶은 교육에 대학이 맞춰갈 수 밖에 없고, 인구문제 지역 간 격차, 변하는 시대, 교육부 정책 등의 요인으로 대학도 시장 수요에 맞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해마다 신입생 확보에만 초점을 맞추는 학제개편으로 주목받는 트렌드만 전전하는 사태가 이어진다면 오히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대학의 특수성 잃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역 교육계 관계자는 “대학들마다 신입생 모집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1학년때 교양 위주 과목을 배우고, 2~3학년때 전공기초를 배운 후 4학년때 전공에 대한 전문성 갖춰야 하는 구조를 잊고 있는 것 같다”며 “일부 대학은 보직교수들에 의한 일방적인 학제개편으로 반대가 심했지만, 무리수를 두며 강행하다 결국 학부제가 '한지붕 밑 세가족' 현상을 만들어 정통성을 잃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학들은 개별 대학의 특수성과 교수진의 전공분야와 역량에 알 맞는 학제 개편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대학이 개성과 다양성 없이 서로 닮은꼴이 돼 결국 지역대의 미래는 어두워 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정우 기자 wooloosa@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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