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수필가

능소화가 졌다. 이글거리는 태양 빛을 머금고 만개하던 능소화가 한줄기 소낙비에 꽃송이를 뚝뚝 떨구었다. 송이송이 떨어져 땅바닥을 주홍빛으로 물들이며 사그라져가는 모습이 가히 처연하다. 분명 곱디고운 꽃이지만 함부로 손을 내밀어 쉽게 꺾지 않던 꽃, 아무나 실없이 내미는 손길에 결코 쉬이 맞잡아주지 않을 것 같은 주홍빛 능소화의 차가운 매력으로 한여름을 더 강렬하게 했다. 조선 시대에는 능소화 매력에 반한 양반들이 양반 꽃이라 불렀으며 상민 집에는 심지 못하게 했다는 설도 있다. 누구나의 손길을 수더분하게 잡아주는 순진무구한 온화함이 모자란 다소 냉소적인 이미지 앞에서 서성대다 보면 그 말도 일리가 있는듯하다.

그분도 그랬다. 그리 잦은 만남은 아니었어도 만날 때마다 꽃처럼 환하게 웃었지만 진솔하게 소통할 수 있는 여지는 쉽게 주지 않았다. 기품이 있다거나 위엄에 눌려 근접할 수 없는 고고한 성품과는 확연히 다른 차가운 기운이 베일처럼 싸여있는 듯 그분에게 가까이 다가서기가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함께하는 시간 내내 뭔지 모를 강한 기운이 후광처럼 비추어 무심하게 외면할 수 있는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었다. 소리 내 웃는 법도 그렇다고 조용하게 존재를 감추지도 않던 분. 그분을 볼 때마다 삼복더위에 담장 위를 넘나들며 무수히 피어나던 능소화를 떠올렸던 건 왜인지 모르겠다.

몇 년 전 그분과의 첫 만남을 잊을 수가 없다. 시 한 편을 들고 와 내 앞에 내밀며 품평과 지도를 부탁했다. 작품을 펼치기도 전에 우수로 출렁대는 눈망울과 풍겨오는 냉소적 기운이 먼저 내 안으로 들어와 쉽게 입이 열리지 않았다. 품평할 만큼의 해박한 지식도 짧았지만, 삶의 고뇌가 진득하니 묻어난 작품 앞에서 내 감정에 먼저 가위가 눌리는 걸 느꼈다.

깊고 깊은 심연을 휘저어 소용돌이가 가라앉거들랑 뒤엉킨 감정들 다 내려놓고 뒤안길을 맑은 시로 꽃 피우듯 그려내라 일렀다. 고되고 상처 많은 삶일지라도 해묵고 탁한 감정들을 정화하고 문학으로 승화시킨다면 아름다운 시가 될 거라 허름한 고언을 건넸다. 간간이 시 한 편씩을 전해 받았지만 어떤 언지도 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능소화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던 새벽에 그분의 부음이 날아들었다. 능소화는 슬픈 전설을 품은 꽃이다. 하룻밤의 성은을 입은 궁녀 소화의 이루지 못한 애처로운 사랑이 한이 되어 피어난 꽃이란다. 오매불망 기다리는 마음 간절하고 애절한 사모라면 죽어선 들 구중궁궐 높다란 담장 못 넘었을까, 한여름 땡볕인들 막을 수 있었으랴.

능소화가 꽃송이를 무심히 떨구듯 그분의 소천길에는 이승의 고된 짐을 하나둘 내려놓고 가볍게 사뿐히 하늘에 올라 고운 꽃이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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