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호 충남소방본부장

지난봄에 출장 차 홍성 읍내를 지나던 길에 내 눈을 의심한 일이 있었다. 전북 임실군에 있는 오수의견과 비슷한 기념상이 차창 밖으로 얼핏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뭘 잘못 보았는가 싶을 정도였다. 술에 취해 들판에 누워 잠이 든 주인을 들불로부터 구하고 숨진 의로운 충견에 관한 이야기를 진화구주형(鎭火救主型) 의견설화라고 한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적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최근에도 불이 났지만 반려견이 짖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 목숨을 건졌다는 아찔했던 사연이 외국에서도 가끔씩 들려오는 뉴스거리다.

필자는 오래전에 의견설화에 대해 관심이 높아 이야기를 찾고 실제 몇 곳을 방문한 경험도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고장 홍성에 의견비가 있다는 것을 몰랐던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다. 홍성의 의견설화는 오수의견과 매우 비슷한데 개가 몸을 적셨다는 방죽과 개를 묻어주었다는 방죽 안의 작은 섬인 ‘개섬’이 지금도 있어 설화로서의 가치도 높다. 원래 방죽이름도 ‘개방죽’이었다가 인근에 홍성역이 생기면서 ‘역개방죽’이 되었다고 한다. 홍성군이 이것을 기록하고 알리기 위해 10년 전에 의견상과 유래비를 세운 것이었다. 돌아오던 길에 잠깐 다시 들러서 유래비의 내용을 읽어보면서 과연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일까에 대해서 생각했다.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도 사연이 있으면 훨씬 가치가 올라간다. 상권이 활성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특정 지역들을 보면 모두 스토리를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각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어떤 작가는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라는 책을 통해서 취업준비생들에게 개인 스토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해 필자는 스토리의 위력을 체험한 적이 있다. 천하의 명당 중에 하나라는 공주 마곡사의 군왕대(君王垈)에서 발이 땅바닥에 붙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경험이 있다. 어떤 기념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할 것도 없어 보였지만 지금도 가끔씩 떠오르는 것은 군왕대가 품은 이야기를 아주 맛갈스럽게 설명하고 상황에 맞는 시까지 낭송해 준 훌륭한 문화해설사 덕분이었다. 바로 이것이 이야기가 품고 있는 매력이자 위력이다. 우리 주변의 어느 것 하나 크고 작은 사연을 갖지 않은 것이 없다.

올해 충남 소방은 오래된 유물 찾기와 보존운동을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의 유물이 훼손되거나 사라져 지금은 남아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럴수록 지금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절실함이 있기에 오래된 창고 구석구석을 뒤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얼마 남지 않은 그 유물조차도 설명해 줄 수 있는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구술로라도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분들은 이미 돌아가신 상태다. 결국 우리 것인데도 불구하고 언제 어떤 경위와 목적으로 구입했고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실물은 있는데 기록이 없으니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데도 어려움이 많다.

우리나라는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을 16점이나 보유하고 있지만 세상에는 아무 기록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것들도 많다. 청풍명월의 고장 충청의 이야기를 지역 특유의 너스레와 능청으로 풀어낸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것이다. 충청도 마을 곳곳에 남아있는 이야기가 보존되고 널리 회자되며 충청 발전의 동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야기도 무형문화재처럼 계승되어야 할 우리의 소중한 문화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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