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수 충북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또 한명의 악우(岳友)가 히말라야의 별이 되었다. 열 손가락 없는 장애인 김홍빈 대장이다. 김 대장은 광주 송원대학교 산악부 83학번으로 필자와 같은 동시대 산에 다닌 친구다. 황소보다도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 김 대장은 1991년 맥킨리 단독등반 중 조난으로 인해 열 손가락을 자르는 수술을 했다. 그 후 장애인 알파인스키 국가대표로 활동하며 투혼을 불살랐다.

그런데도 그가 가지고 있는 DNA는 그를 다시 산으로 인도했다. 12년에 걸친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에 이어, '2006년 가셔브롬 2봉 등정을 시작으로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다 오르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15년의 시간, 신들의 공간인 8000m급 봉우리 13봉을 오르고 마지막으로 파키스탄 카라코럼 히말라야에 있는 브로드피크(8045m)로 향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지친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장애인 김홍빈도 할 수 있으니 모두 힘 내십시요”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왔다.

그리고 지난 18일 오후 4시 58분 파키스탄 카슈미르 북동부 카라코람산맥 브로드피크(8047m) 정상 등정에 성공했다. 희망의 감동도 잠시 하산 도중 7900m 지점에서 사고를 당했다는 비보를 접했다. 자일에 매달려 있는 상황에서도 본인이 위성전화를 통해 구조요청을 했다. 근처에 있던 러시아 등반대가 도착했을 때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한다. “등강기(쥬마)를 이용해 15m정도 올라오다 어떤 문제가 발생해 아래로(중국쪽) 추락했다”는 것이 러시아 대원들의 이야기다. 모든 국민은 김 대장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희망을 갖고, 간절한 마음으로 김 대장의 구조와 무사 귀한 소식을 국민과 함께 기다리겠습니다. 국민들께서도 그의 안전을 빌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메시지를 올렸다.

악천후가 물러가고 파키스탄과 중국의 국경을 넘나드는 헬기 수색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26일 등반대는 그를 끝내 찾지 못한채 수색을 종료했다. 김 대장 부인은 "김대장은 평소 사고가 나면 2차 사고나 폐를 끼치고 싶지 않고 산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며 "수색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한 위대한 산악인 김홍빈의 모습이다.

아직도 히말라야의 별이 된 수많은 산악 동료들이 그곳에 있다. 저 또한 2009년 안나푸르나 산군 히운출리북벽에 '직지루트'를 개척하려고 '직지원정대'를 꾸렸다. 그곳에서 아직도 기억의 저편을 차지하고 있는 후배 악우 민준영·박종성이 '히말라야의 별'이 됐다. 9월 25일 8시 15분쯤 '컨디션 최상'이라는 마지막 무선을 하고 후배들은 제 곁을 떠났다. 2019년, 10년만에 그들은 기적적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살아있는 자들의 고통 또한 길었다. 김 대장과 함께 등반했던 모든 대원이 겪어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 빨리 마무리되었으면 한다. 어쩌면 김 대장이 가장 바라는 마음일 거다. 이제 우리는 서로 감싸 안고, 모진 고통을 함께 나눠야 한다. "친구 이제 편히 쉬시게. 그대가 그토록 원하던 히말라야의 자락에서 악우들과 못다 한 산 이야기를 나누며 영면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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