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석 한밭대 공공행정학과 교수

지역중심의 과학기술혁신체제(Science·Technology and Innovation System)라는 어느 지방자치단체도 가보지 않은 길이 대전에서 시작된다. 우리나라 과학기술혁신체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가 중앙집권적 연구개발시스템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즉 지역의 과학기술혁신과 산업발전을 중앙에서 기획하고 이를 사업화하면, 지방은 경쟁을 통해 이 사업들을 수주하는 방식으로 지역의 과학기술혁신의 집행이 이뤄졌다. 이는 과학기술의 내용과 방법이 정해져, 그대로 실행만 해도 되는 개발 또는 추격(catch-up) 시기에는 매우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그러나 지역의 연구개발기반과 산업특성에 맞춰 전혀 새로운 맞춤형 과학기술혁신을 추진해야 하는 탈추격(post catch-up) 시기에 이러한 방식은 더 이상 효과성을 담보하기 어렵게됐다.

 이에 대전이 선도적으로 지역중심의 과학기술혁신체제를 구축하여 작동시키고 있다. 이의 추진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허태정 대전시장의 과학기술혁신에 대한 의지와 진정성을 기반으로 한 리더십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의 실천을 조직과 활동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조직 측면에서, 대전시는 4차 산업혁명 특별시, 과학수도를 표방하면서 지방자치단체 사상 처음으로 과학부시장을 임명하고, 과학산업특보, 과학산업국 등의 공식적인 행정조직을 갖추고 있다. 또 대전과학산업진흥원을 설립해 지역연구개발 관련 기획·평가 기능뿐만 아니라, 지역혁신체제 관점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과학부시장의 주재 하에 경제과학상생협의회를 통해 과학산업국, 일자리경제국 행정관료와 대전테크노파트 등 산하기관 전문가들이 협력체제를 갖췄다.

 이들의 활동을 보면 과학부시장은 경제과학상생협의회를 통해 연구개발, 산업지원, 일자리 창출을 연결하는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맞춤형 의제를 도출해 추진하고 있다. 대전의 큰 자산인 대덕연구단지 출연연구기관과의 협업도 활성화되고 있다. 이에 대전과학산업진흥원은 특구활성화 워킹그룹을 통해 대덕연구개발특구의 기술융합과 사업화 활동을 대전에 연계시키는 ‘재창조’를 도모하고 있다. 또 대전시 자치구별로 과학기술 리빙랩을 도입해 연구단지와 시와의 연계를 강화할 계획이다. 이러한 생태계 구성에 대학의 역할을 뺄 수 없는데, 대전의 산학연이 인프라를 공유하는 플랫폼을 통해 교육, 생산, 연구의 기능을 서로 교환하면서 연계하는 혁신적인 방안을 마련 중이다. 예컨데 온라인 교육으로 여유가 생긴 대학의 공간을 기업에 분양하여 청년들의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벌써 일부에서는 대전시의 과학산업정책의 성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제대로 된 지역 과학기술혁신체제의 첫발을 뗀 대전시를 바라보는 중앙정부나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지금은 방향을 잡은 대전시를 한목소리로 지원해야 할 때다. 이러한 관점에서 몇 가지 제언을 추가하고자 한다. 첫째 지속가능한 과학기술혁신체제의 핵심은 민간이다. 이들이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판교와 경쟁하는 스타트업 밸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어 지역의 산학연이 인재를 길러내고 좋은 기업을 만들고, 이들이 다시 지역의 청년을 고용하는 지역정주형 선순환체제를 모색해야 한다. 이 길이 대전이 살 길이다. 이러한 과제들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대전의 혁신주체가 머리를 맞대고 정보를 공유하고, 아이디어를 짜내고, 과제를 함께 추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러한 판을 짜는 데에 대전시의 중요한 역할이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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