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수 ETRI 기술상용화센터장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나는 배아픈 가수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가수가 있었다. 뛰어난 가수를 보면 시기하고 질투하는 게 재능(?)이어서 그렇게 말했단다. 31세의 나이에 10년이 넘은 가수 생활에도 여전히 무명가수 신세여서 자신의 이름이 아닌 '30호 가수'라는 숫자로 불려야 한다면 누구나 그런 생각이 들 법하다. 그런데 그 가수는 오디션 회차를 거듭할수록 심사위원과 청중을 뒤흔들며 그의 노래에 빠져들게 했다. 이미 알려진 유명가수들의 노래를 불렀음에도 그의 노래를 듣는 사람은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새롭다고 했다. 더 나아가 어떤 이는 원곡을 잊을 정도라고 했고, 30년 전의 서태지와 아이들을 보는 듯하다고까지 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그가 기존의 노래 문법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해석하고 불렀기 때문일 것이다. 마침내 그는 이승윤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찾고 1등 가수가 됐다.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은 이전에도 여럿 있었다. 2002년 월드컵 16강 전에 이기고 나서 우리나라 월드컵 축구 감독이었던 히딩크는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라고 말하며 8강, 4강의 희망을 드러내었다. 스티브 잡스도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에서 축사를 통해 "배고픔에 머물라 (Stay Hungry!)"고 말하며 현재에 안주하기보다는 미래의 더 큰 성공에 대해 갈망하기를 주문했다. 하지만 그 표현이 배아픔이든 배고픔이든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끊임없이 벤치마킹하며 그들보다 부족한 점을 채우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들의 방식을 모방하기보다 자신만의 경쟁력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차별화함으로써 경쟁의 패러다임을 바꾸려고 한다. 상황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오늘은 후자의 방식을 강조하고 싶다. 전자의 경우, 후발주자가 모방을 통해 쫓아가려 해도 경쟁자가 더 멀리 가버리면 언제나 뒤쫓는 신세일 수 있어서다. 반면 후자의 경우는 스티브 잡스가 당시 유행하던 개인용 컴퓨터 매킨토시를 출시하면서 명령줄 인터페이스 대신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와 마우스를 채용한 후 이를 홍보하기 위해 내놓았던 광고문구 '다른 것을 생각하라 (Think Different!)'와 결을 같이한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전기에서 이 광고문구를 보고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난 후 극적으로 다시 돌아온 기간 동안 어느새 자신의 정체성을 잊어버리고 남들을 흉내 내기 바쁜 애플 직원들을 보며 눈물이 났었다며 이제부터라도 다시 진정한 자신을 되찾고 이 문구처럼 다른 것을 생각하며 새롭게 출발하자는 직원들을 향한 호소도 담겨있다고 했다.

이와 같은 패러다임 전환적 사고가 지금은 대전시 발전전략에도 시기적절하게 반영되고 있는 것 같다. 한때는 대전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회의나 언론매체를 통해 소개되는 내용 들을 보면 어김없이 '노잼도시 대전', '대기업 없는 도시 대전'을 우려하는 말들이 많았다. 그리고 곧이어 재미있는 콘텐츠 개발, 대기업 적극 유치 등이 마치 유일한 대안인 양 목소리를 높이는 주장을 종종 들어왔다. 그런데 요새 들어 그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것이 여간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더는 대전시가 부족한 것으로 배 아파하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대전시가 보유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자원, 즉 풍부한 과학기술과 연구인프라, 그리고 혁신적인 창업 생태계를 기반으로, '따라가는 도시가 아닌 유일한 1등 도시'로 나가고자 하는 새로운 전략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대기업 유치보다는 유니콘 기업육성이나 창업 및 AI데이터 허브도시와 같은 지역클러스터 육성전략에, 노잼도시보다는 보다 살기 좋고 안전하고 편리한 도시완성으로 도시 간 경쟁에서 승부를 건다. 이제는 타 도시와 예전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지 않는다. 경쟁은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다. 1등 대전시민으로 사는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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