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호 충남소방본부장

행복은 인류에게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화두의 하나일 것이다. 최근에는 사람들의 가치관이 더욱 다양해지고 그에 따라 삶의 방식이나 형태도 각양각색이다. 소위 남의 눈치 안 보고 나름대로의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을 함축적으로 나타낸 신조어가 웰빙(well-being)일 것이다.

이런 사회적 경향 속에서 또 다른 측면으로 등장한 개념이 바로 건강수명과 웰다잉(well-dying)이다. 건강수명은 단순히 길게 사는 것보다는 건강하게 원하는 것을 하면서 즐겁게 살고자 하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선진국에서는 평균수명보다 더 중요한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웰다잉은 평균수명의 증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의학과 의료시스템이 발전하면서 생명 연장술도 향상됐지만 십여 년 이상을 의료기기에 의존하면서 병상에 누워 지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요즘 노인들 사이에서는 집과 가족을 떠나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많다고들 한다. 또 독거노인 가구가 늘면서 홀로 쓸쓸하게 죽음을 맞고 게다가 한참 지나서야 발견되는 고독사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이러한 문제가 정책의제화돼 2016년에 일명 연명의료결정법이라고 부르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이 제정됐다. 행복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의 여정을 아름답게 정리하고 평안하게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바람이 그만큼 간절한 시대가 된 것이다.

웰다잉에 대해서 한국죽음학회는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소방에도 이것은 중요한 정책과제가 되었다. 고령화의 진전으로 화재 사망자의 60% 정도가 65세 이상의 노인이다. 올해 현재까지 충남에서 화재로 안타깝게 돌아가신 8명의 평균연령은 74세였고 그중 5명이 80세 이상의 고령이었다. 통계가 말해주듯이 노인들은 인지력과 신체 활동력이 저하되어 화재 대처 능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현장 감식을 하면서 화재 사망자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 고단했던 생을 화재로 마감했다는 것에 너무 가슴 아프다.

그래서 노령사회의 화재 사망자 저감을 위해 소방은 ‘화재경보기 2580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다. 현재 60%대인 주택용 화재경보기 보급률을 2025년까지 80%로 올리기 위한 정책이다. 화재경보기는 불이 나면 연기를 감지해 경보를 울려서 빨리 대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주먹 크기만 한 소방기구다. 1977년부터 대대적으로 보급사업을 시작한 미국은 11년 만인 1988년에 설치율 80%를 달성해 주택화재 사망자를 45%나 감축했다. 우리나라도 2012년 기준을 마련해 기존 주택에도 법적인 설치 의무를 뒀다. 다행히 충남은 기초생활수급자, 독거노인 등 재난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무료 보급사업을 실시해 현재 설치율이 70%대로 전국 평균보다 높다. 특히 2016년 대비 5년 만에 보급률이 3배 이상 늘면서 화재경보기로 목숨을 구한 사례도 2배 이상 증가했다.

이제 화재경보기는 주택 안전의 필수품이다. 주방과 거실, 방 3개를 기준으로 5개 모두를 설치하는데 3만원 정도면 되니 비용부담도 크지 않다. 웰다잉 시대에 화재로부터 부모님을 지키는 것은 자식들의 몫이다. 3만원이면 누구나 효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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