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 수필가

그녀의 통 큰 선물이 대문 앞에 수북하다. 문 앞에 놓인 농산물을 바라보니 일손을 보태러 가자던 말이 떠오른다. 무엇보다 '새벽에 밭으로 출발하자'는 문자를 읽지 못하고 깊은 단잠에 빠진 것이다. 전화벨 소리에 깬 시간은 이미 그녀가 수확한 통통한 마늘이 대문 앞에 도착한 후다.

볼그레한 빛을 띤 마늘은 흙도 마르지 않은 상태이다. 그녀는 농사지은 고구마와 마늘 등을 보내며 친정엄마처럼 아낌없는 정을 나눈다. 올해는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일손을 보태고자 마음을 먹었지만, 새벽잠이 산통을 깨고 만다. 잠 많은 나를 깨우지 않은 것도 그녀의 배려이리라. 그녀는 바로 나의 어릴 적 친구이자 올케이다.

마늘 대를 잡아 줄기를 가위로 자르고, 마늘을 까기 쉽도록 쪽을 나눈다. 밭에서 바로 날아온 터라 촉촉하여 작업이 수월하다. 바짝 마른 마늘과는 달리 껍질도 잘 벗겨져 마늘 까는 재미가 있다. 매번 베란다에 널어두고 필요할 적마다 꺼내 먹곤 했지만, 이번엔 껍질을 벗겨 냉장고에 보관하려고 한다. 선잠을 떨치고 신문지를 깔고 마늘 까기에 돌입한다.

날 것이 화를 부른 것일까. 아니 마늘의 정체를 간과한 탓이다. 매운맛이 손가락을 사정없이 공격한다. 얼얼하고 쓰라린 통증이 예사 통증과 다르다. 생마늘은 아린 성분이 강하다는 걸 생각지 못한 탓이다. 흐르는 물로 한참을 씻은 뒤에야 손끝의 아릿함과 통증이 잦아든다. 마늘은 어떤 음식에도 빠져선 안 될 중요한 양념이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앙칼스러운 모습에 혼이 난다. 하지만 뽀얗게 까놓은 마늘을 보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작은 알맹이들은 모아 장아찌를 담기로 한다. 마늘을 넣은 병에 간장과 물, 식초와 설탕을 적당한 배율로 섞어 붓고 봉한다. 그리고 굵은 알 몇 개는 골라 얇게 저며 노릇하게 구운 후 다시 굴소스와 함께 볶는다. 부드럽고 고소한 마늘 볶음에 갓 지은 밥으로 늦은 아침을 먹는다. 마늘의 매운맛이 아무리 강해도 이 맛을 포기할 수는 없다. 마늘을 싫어할 한국인이 어디 있으랴. 아마도 우리 민족의 강인한 정신도 매운맛에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한 달 정도 숙성시키면, 새콤달콤하고 식감 좋은 마늘장아찌 맛도 볼 수 있으리라. 올해도 고마운 올케 덕분에 마늘장아찌와 양념으로 쓸 마늘도 넉넉하니 마음은 부자가 된 듯 흡족하다.

생마늘의 매운맛을 호되게 경험한 날이다. 우리의 인생도 마늘과 다르지 않으리라. 삶의 어느 한 시기 마늘의 매운맛처럼 고통이 따랐고, 뼈저린 아픔을 이겨낸 만큼 정신도 강해지고 여유도 생겼다. 불현듯 고향 집 흙벽에 걸려있던 마늘 타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앞으론 마늘을 먹을 때마다 손끝에 아릿한 매운맛이 떠오르리라. 하지만, 냉장고에 햇마늘을 넉넉히 저장하였으니 고통의 대가로는 과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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