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수 ETRI 기술상용화센터장

대덕연구개발특구(이하 대덕특구)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거리나 도로에 사람이나 차량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

필자도 이곳에 온 지 오래지만, 출퇴근 시간 외에 연구소 바깥에서 사람들을 보기가 쉽지 않다.

또 어떤 이는 이곳이 한국이 아니라 어느 외국에 온 듯하다고 한다.

눈을 어디로 돌리더라도 쉽게 보이는 나지막한 산과 숲, 길을 따라 빼곡한 가로수 나무들은 어느 외국의 풍경 못지않다.

‘사람이 북적이는 연구단지’라는 개념은 대덕특구의 전신인 대덕연구단지 설립이 결정된 후 공간설계를 기획할 당시에 어쩌면 설계자의 머릿속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외국에서 활동하는 유수의 과학자들을 유인하기에 좋은 공간, 연구자가 연구개발에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에 더 신경을 썼을 가능성이 더 크다.

마치 외국의 교외 고급 주택가를 연상시키는 주택들이나 낮은 층의 아파트들, 외부로부터 잘 가려진 연구기관들을 보면 그렇다.

지금은 고층아파트도 조금씩 들어서고 연구기관의 담벼락도 철조망에서 나무로 바뀌고 있지만 최초 공간설계의 탓인지 거리풍경은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초창기 대덕특구에서 일어난 활동들을 보면 사실 사람들이 굳이 북적일 요인이 별로 없다.

개발되는 기술들은 대부분 원천 기초기술이 주류여서 외부 사람이나 기업의 관심과는 거리가 있었다.

설령 기업이 관심을 가질 만한 기술이라 하더라도 일부 대기업 외에는 접근이 어려운 대형기술이 대부분이었다.

일반 시민에게 과학기술은 전문가들이나 접근하는 어려운 영역이었을 터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덕특구 내외부에 큰 변화가 있었다. 개발기술 중에서 기업들이 사업화에 활용할 만한 응용기술의 비중이 현격히 높아졌다.

기술 규모도 초대형기술에서부터 소형 요소기술까지 다양해졌다.

실제로 기술 대다수가 중소기업으로 이전되고 있다.

중소기업의 기술력 향상으로 연구기관들과 협업할 수 있는 기업들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그리고 일반 대중들도 정보화시대와 제4차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과학기술에 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필자는 이것을 ‘섬’에서 ‘광장’으로의 전환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전의 대덕특구 50년이 우수한 연구개발자들이 외부의 간섭없이 기술개발에만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섬을 만드는 과정이었다면, 앞으로의 50년은 우리나라 산학연과 시민, 나아가 세계의 혁신 주체들이 함께 소통하며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가는 광장으로 탈바꿈하는 여정이 돼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러한 변화를 담아낼 노력이 조금씩 가시화되고 있다.

‘어울림 플라자’가 1월에 과학기술인과 기업인의 소통과 협업의 장으로 본격 운영에 들어갔고, ‘대전사이언스콤플렉스’는 조만간 완공돼 많은 창업기업과 지원기관의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대전시와 함께 지역의 청년, 기업, 지역사회를 위한 새로운 혁신공간인 ‘마중물 플라자’를 조성하고자 한다. 더욱이 ‘대덕특구 50주년 재창조 종합계획’이 최종 확정됐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마침내 대덕특구에서 과학기술을 매개로 사람이 연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사람이 북적이는 일만 남았다. 사람이 북적이는 광장에서 역사가 만들어졌듯이 대덕연구개발특구에서도 과학기술을 통한 새역사의 장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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