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호 충남소방본부장

“아이구 소방관들 바뿐디 나 같은 늙은이까지 전화허먼 미안히서 뭇히유”

얼마 전 팔순의 홀몸 어르신 댁을 방문해 아프면 꼭 119로 전화하시라고 했더니 돌아온 답변이었다. 그리고는 말기암 환자인 아들 얼굴 한 번 볼 수 없어서 가슴 저린 이야기, 비가 오면 집에 물이 새고 보일러실 지붕이 무너질까 걱정된다는 말씀 등 고달픈 인생의 자서전이 이어졌다. 계속 말벗을 해드릴 수 있다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 같았다.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아직도 119에 전화하는 것을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119가 출동하면 벌금이나 사용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부르지 못하겠다고 잘못 알고 계신 분들도 있다.

일각에서는 불필요한 소방출동을 줄이기 위해 경우에 따라서는 거절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비응급 상황임에도 상습적으로 구급차를 부르거나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것도 119에 신고하는 사례를 줄여보고자 하는 궁여지책이라는 점은 이해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상황에서 응급과 비응급을 시민들이 스스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가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증증도를 물어본다고 쉽게 답을 주지 않은 것처럼 증상만으로 응급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현대사회가 안은 문제점 중의 하나인 양극화는 사회복지 확대의 필요성을 강화시키고 있다. 과거에는 사회적 약자가 받는 도움에 대해서 주면 고맙고 안 주면 할 수 없는 은혜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복지가 법령으로 만들어진 시대이다.

온정적 활동의 도덕적 규범에서 법적 규범, 즉 국가의 의무로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소방서비스도 마찬가지였다. 과거에는 소방관 중에서도 서비스를 베풀었다는 관점에서 시민을 수혜자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아직도 그러한 인식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 안전은 생존권적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국민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관여해서 확보해 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생존권이다. 생존권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온정주의적 시혜가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주어진 천부적인 권리로 보아야 할 것이다.

충남 소방은 이러한 차원에서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시책을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이용해 줄 것을 알리고 있다. 작년부터 시작한 임산부구급대, 의용소방대 노인안전지킴이 뿐 아니라 올해는 중증장애인 병원이송서비스도 시작했다. 또한 재난이나 심각한 질병 등으로 생활이 극히 어려워진 분들에게 소방공무원과 의용소방대원이 조성한 기부금으로 경제적 지원을 하는 ‘가치가유 충남119’사업도 주목받고 있다.

이제 소방서비스는 안 해줘도 할 수 없고 해주면 고마운 서비스가 아니라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되었다. 그런 방향으로 소방은 발전하고 있으며 소위 선진국에서도 한국 소방의 견고한 시스템에 대해 놀라고 있다. 과거 몇십 년 동안 우리는 선진소방을 따라 잡겠다고 외쳤었지만 이제는 한국 소방을 배우고 싶어 하는 나라가 늘어가고 있다. ‘한국의 모든 소방서비스는 무료이고 119는 가장 든든한 이웃입니다’라는 것을 거듭해 말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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