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규의 서예이야기 <450>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晉)나라와 초(楚)나라가 정(鄭)나라를 사이에 두고 큰 싸움이 벌어졌는데, 이 싸움에서 진나라의 장수 순림보(筍林父, 기원전 593년)가 대패하고 돌아오자 진경공(晉景公)은 그의 관직을 박탈하고 참형(斬刑)에 처하려 했다. 그러자 대부(大夫) 사정자(士貞子)가 반대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공(文公)시절 우리 진나라가 초나라와의 성복대전(城?大戰)에서 크게 이겼으나, 문공은 근심에 쌓여 있을 뿐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좌우 신하들이 까닭을 묻자 문공은 ‘성복의 싸움을 지휘한 초나라의 영윤(令尹) 성득신(成得臣)이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 어찌 마음을 놓을 수 있겠는가? 곤경에 빠진 짐승도 발악을 하는 법인데, 하물며 한 나라의 재상은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곤수유투 황국상호:困獸猶鬪 況國相乎)’ 얼마 후 성득신이 초왕(楚王)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문공은 비로소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 후부터 진나라는 초나라와의 싸움에서 연전연승했으며 초나라의 국력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습니다. 지금 순림보를 죽이는 것은 초왕이 성득신을 죽이고 나서 우리에게 연전연패한 것과 마찬가지여서 그들을 크게 도와주는 셈이 됩니다. 한 번의 싸움에 패했다 해서 충신을 죽게 할 수는 없습니다.”

사전자의 말을 들은 뒤 진나라의 경공은 순림보의 죄를 면하고 관직도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줬다.

좌씨전(左氏傳) 선공(宣公) 12년 유투는 곤수투(困獸鬪) 혹은 곤투(困鬪)라고도 말한다.

‘이제 나를 해치려는 사람이 없게 됐다(莫余毒也已:막여독야이)’에서 ‘나를 건드릴 사람이 없다’는 뜻의 ‘인막여독(人莫余毒:하고 싶은 일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이란 말이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됐다.

우리들도 곤수유투(困獸猶鬪:곤경에 처한 짐승일수록 더욱 발악을 한다)의 성어를 잘 새겨 모든 일을 바르게 처리해 보자.

<국전서예초대작가및전각심사위원장·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