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국회의원

"깊은 책임을 느끼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지시하겠다."

2014년 10월 1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28사단 윤일병 사망사건과 현역 사단장의 부하 여군 성추행 사건 등에 대해 당시 한민구 국방장관이 거듭 강조한 말이다. 이후 7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軍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고 안타까운 사건만 되풀이되고 있다.

최근 공군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부사관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번 사건 역시 부실수사, 봐주기수사 의혹이 불거지면서 軍의 자체적인 수사와 자정 노력만으로는 軍 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인권침해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여실히 증명됐다. 이제 더 이상 국방부의 '알맹이 없는' 사과와 '소나기 피하기식' 땜질 처방을 믿고 있을 수만은 없다. 보다 적극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필자는 지난해 12월 국가인권위원회에 軍인권보호관을 두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軍인권보호관 등의 군부대 방문조사권 △군인 등의 진정권 보장 수단 제공 △軍 내 사망사건 발생 즉시 위원회 통보 △사망사건 조사·수사 시 軍인권보호관 등이 입회 △軍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 보호조치 요구 등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방부의 미진한 태도 등으로 인해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계속 계류 중이다. 심지어 국방부는 지난 4월 20일 의원실을 방문해 사망사건의 통보 및 조사·수사의 입회와 관련한 규정 전부에 대한 삭제(부동의)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軍인권보호관 등 병영문화 개선을 위한 노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5년 1월 육군훈련소에서 한 대위가 훈련병들에게 인분을 먹이는 사건이 발생하고 5개월 뒤 경기 연천군 전방부대에서 감시초소(GP) 총기 난사로 8명이 숨지자 국방부는 범 정부 차원의 '병영문화 개선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대책위는 그해 10월 병사들의 인권을 보장한 군인복무기본법 제정, 인권담당관 신설, 상담관제 도입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다. 국방부는 이 제안에 따라 2007년 2월 병사들의 기본권을 규정한 '군인복무기본법'을 발의했으나, 2008년 정권이 교체되면서 '군인복무기본법'은 국회 심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다가 결국 폐기됐다. 이명박 정부의 국방 정책 초점이 '전투형 군대 육성'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느슨해진 軍 기강을 바로잡겠다며 '군기'는 더욱 세진 반면, 병영문화 개선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2014년 윤일병 폭행사망 사건 등이 일어나자 '軍 사법체계 개혁'과 '옴부즈맨 도입' 등 외부에서 병영문화 개선안이 쏟아졌지만 국방부와 軍은 면피성 토론회만 개최하면서 이들 개혁 과제들을 사실상 회피했다. 당시 국방부는 옴부즈맨 제도에 대해 '지휘권 약화'와 '정보 유출'을 이유로 들며 반대했다. 민간 전문가들은 軍이 극도의 폐쇄성과 불투명성을 극복하려는 자기 노력 없이는 병영문화 개선은 기약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병영 내 폭력과 가혹행위 역시 근본적으로 뿌리 뽑히기 힘들다며 우려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그 이후로도 軍 관련 사건·사고는 끊임없이 계속됐으며, 국민들의 軍에 대한 불신은 커져만 갔다. 지금 느껴지는 국민들의 분노는 15년 넘게 제자리를 맴돌며 조금도 개선되지 않은 병영문화와 여전히 제도개혁에 미온적인 국방부와 軍을 향해 있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은 軍 성범죄 근절과 피해자 보호 혁신 태스크포스(TF)의 첫 회의를 열고 성범죄 대응에 폐쇄적인 군대 문화와 제도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법안 처리를 위한 새로운 추진 동력이 생겼다는 점에서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전투력은 상명하복 기강으로만 생기는 게 아니다. 2014년 당시 국회의원이던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평시부터 상하급자 간 인격적인 대우가 보장되고 민주적인 가치들이 살아 움직여야 위급한 상황에 함께 맞설 수 있다. 병영문화 개선 없이는 강한 군대가 결코 만들어질 수 없음을 국방부와 軍은 알아야 한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