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원 오원화랑 대표

19세기 영국의 사상가 존 러스킨이 베네치아 역사를 논할 때 주장한 말이 위대한 국가는 세권의 자서전을 쓰는데 한 권은 행동이며, 한권은 글, 또 한권은 미술이라고 했다. 어느 한 권도 읽지 않고서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중 미술이 가장 믿을만 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러스킨에 따르면 국가의 행동은 잊힐 수 있고, 그 기록은 왜곡될 수 있지만 미술만큼은 과거가 남긴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충분하다고 보며 과거 역사를 비추는 가장 정확한 거울이었던 것이다.

러스킨의 글이 떠오르는 것은 우리나라가 지금 사회적 현실이 확실한 미술 자서전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미술품 2만 3000여 점을 국가에 기증한다는 것으로, 국가 소유 미술품이 됐기 때문이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어마어마한 도약을 하게 된 것이다. 그중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와 단원 김홍도(1745 ~ ?) 추성부도(보물 1393호)를 최고로 꼽는데 조선 회화사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그림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현대 그림에서도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을 비롯해 외국 작가 클로도 모네, 마르크 샤갈 등 국내외 거장의 근현대 미술품 1600여 점 또한 기증된다.

그림 가격을 환산해 보면 2조~3조원이며, 시가로 10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래서 부산, 경남의령, 수원, 대구, 세종 등 전국 각지에서 이건희 컬렉션을 유치하고자 하며, 우리 대전에서도 유치전에 뛰어들고 있다.

대전은 어느 곳 보다 좋은 여건에서 경쟁을 하고 있지 않는가 생각한다. 국토의 중심으로 어느 곳에서든지 2시간이면 접근할 수 있는 여건을 갖고 있으며, 위성 도시로 세종, 공주, 논산, 금산, 옥천, 청주, 천안까지도 아우르는 지리적 여건이 잘 갖춰진 곳이다. 수장고나 전시장의 조건도 마찬가지다. 필자의 생각으로 충남도청이 쓰던 옛 청사는 전시하기에 안성맞춤한 장소가 될 것으로 본다. 오는 7월이면 청사 건물이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으로 되는데, 국립현대 미술관의 수장고 격인 분원 유치와 함께 이건희 컬렉션까지 보유하게 한다면 이보다 더 이상 좋은 곳은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건희 컬렉션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대전시민이 적극적인 자세로 일어서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항상 어떤 이슈가 생기면 뒤에서만 말할 뿐이지 적극적으로 나서질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시장이나 정치인 몇 사람만의 힘으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문제다. 얼마 전에 우리 대전에 있던 중소벤처기업부가 세종으로 이전 결정이 났다. 이 또한 우리 시민 모두가 같이 힘을 합했다면 중소벤처기업부를 세종에 넘겨줬을까? 정말 이번 이건희 컬렉션은 어느 지역보다 먼저 한걸음 빨리 앞장서서 컬렉션 유치로 인한 엄청난 부가가치 창출을 꿈꾸고 대전시민이 정서적 환경에서 건강과 행복을 누리며 백년대계를 향한 도시로 만들어 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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