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화 ETRI 초저지연네트워크연구실 책임연구원

강유화 ETRI 초저지연네트워크연구실 책임연구원
강유화 ETRI 초저지연네트워크연구실 책임연구원

2016년부터 국제표준화 단체인 3GPP(3rd Generation Partnership Project)에서는 5G 표준화를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필자는 2015년 가을, 처음으로 5G 이동통신 네트워크 기술 연구에 참여하게 됐다.

하지만 LTE 기술도 모르고 이동통신 용어가 모두 낯설었다.

이동통신을 오랫동안 연구해 오신 선배 연구진들조차 힘겨워하는 표준화 일을 필자는 무턱대고 표준화단체 이름도 모르고 시작한 셈이다. 돌이켜보면 필자는 3GPP 표준화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이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국제표준화 회의는 평균 200명 정도가 참석하고, 3개의 세션이 동시에 열리며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쉼 없이 진행된다.

5G 네트워크 구조를 담당하는 회의는 참석자 전원의 동의하에 표준규격을 승인하므로 각자 제안하는 기술을 표준에 반영하기 위해 참석자들 간 논쟁이 심하고 서로 설득하기 위한 작업도 회의 기간 내내 계속된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생소하고 작업하는 문서들이나 결과 문서들의 위치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낯선 그룹에 적응하고 그들과 함께 작업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사하고 마지막 세션을 마치면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함께 식사하는 자리는 빠지지 않았다. 각 국에서 온 그들의 영어는 이해하기도 힘들고 긴장 속에서 먹는 저녁은 맛도 몰랐지만 그렇게 참석자들과의 관계를 넓히면서 함께하는 표준화 작업이 훨씬 쉬워졌다.

필자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때 회의 참석자와 선배 연구진의 도움과 지원이 있었다. 회의에 참석하면 영어 외에는 달리 의견을 표현할 길이 없고 이런 절실한 동기는 아무리 마음 먹어도 안 되던 영어 실력도 쑥쑥 늘었다.

변화를 무척 싫어하는 필자는 늘 하던 것, 잘하는 것을 선호하며 새로운 모험은 언제나 부담이고 어려움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해도 회의에서 발표 때마다 두려웠다. 표준화 회의의 특성상 제안된 기술에 대한 의문점, 문제점, 개선 사항 등의 의견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늘 반대하거나 지적하는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일이었다. 일 년에 적어도 여섯 번의 회의를 반복하면서 표준화 작업의 경험과 실력을 쌓아 나갔다. 표준화 회의는 큰 회사의 영향력, 개인 간 관계성 등 기술 외 요소들이 존재하지만 모든 것의 기본은 논리적인 사고의 결과인 ‘기술’이다. 따라서 제안된 기술의 필요성, 중요성, 장점 등을 이해시키지 못하면 부가적인 요소들은 도움이 안 된다.

지난 5년 간 반복되는 회의를 통해 논리를 만들고 기술을 제안하고 이해시키고 타협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솔루션을 제안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됐다.

그 결과로 예상치 못하게 연구원 표준화부문 우수연구 실적상을 받는 영광도 누릴 수 있었다.

처음 표준화를 시작할 때는 겨우 5살된 아이를 두고 출장을 다녀야 해서 마음의 갈등도 많았고 매번 출장 때마다 아이와 눈물을 흘려야 했다. 처음에는 회의마다 부족한 모습에 결과가 늘 두려웠지만, 어느 순간 표준화를 통해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됐다. 모든 것을 고려했다면 필자는 표준화 일의 적격자가 아니었지만 필자를 믿고 무모한 도전을 지원해 준 연구진 덕분에 이제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 새로운 도전의 즐거움을 배우게 됐다.

우리 사회도 실패에 좀 더 관대해져 미래의 연구자들이 더 많은 도전을 즐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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