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찬 충남도립대 총장

▲ 김용찬 충남도립대 총장

 최근 이재명 경기지사의 '세계 여행비 1000만원 지원' 발언이 논란이 됐다.

 대학에 안 가는 청년들이 각자 원하는 바를 경험하도록 사회적 차원에서 지원해보자는 게 이 지사의 아이디어였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막연한 퍼주기'이며 '포퓰리즘의 전형'이라며 날선 비판을 가했다.

 이 논란을 바라보니 대학 총장으로서 내적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대학이 아니라도 청년들이 역량을 높일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는 시각에 공감이 가면서도, 한정된 재원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논리적이었기 때문이다. 양자의 주장 모두 저마다 명확한 이유가 있으니 무자르듯 하나의 입장에 손들어 주기가 쉽지 않다.

 마음 한편으로는 청년 교육을 어떻게 꾸려갈지를 주제로 벌어진 이번 논란이 다소 반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교육은 공동체를 위한 백년대계이기에 인재 육성 방식을 둘러싼 논쟁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한 비용인 탓이다.

 아쉽게도 우리 사회는 교육을 둘러싼 비용을 지불하는 데 인색하다. 이번 논란이 교육 방향 전반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로 확산되기를 내심 기대했지만, 나도 옳고 너도 맞다는 식의 정치적 입장만 확인하는 수준에서 그친 것은 아쉬운 일이다.

 교육은 공동체의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공공재이다. 특히, 모든 것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전환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인재를 키워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뉴노멀 시대다. 남의 것을 배우고 따라하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세계는 새로운 글로벌스탠다드를 창출하고 선점하기 위한 무한경쟁에 돌입했다. 그동안 익숙했던 방식에 안주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3류로 전락하게 된다.

 껍질을 깨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줄탁동시(?啄同時)의 지혜가 절실한 시기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량을 높이려는 청년을 발굴하고 이들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사회적 노력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가능성을 한 뺨 더 넓히는 것에 집중해야 할 순간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역사와 문화적 뿌리가 없는 신생 국가인 미국을 초일류로 만든 원동력이다. 미국은 개방성과 실용성을 내세워 세계 곳곳의 인재를 받아들여 사회의 일원으로 안착시켰으며, 공동체를 구성하는 원리로 '아메리칸 드림'을 활용했다. 말 그대로 안에서 노력하고 밖에서 지원하는 '줄탁동시'의 원리가 미국의 힘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이 주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기회를 준다면 사회의 가능성과 역동성은 활기를 띨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핵심은 '최선을 다하는 자'에 있다. 개방과 실용의 원리는 그 자체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최선을 다하는 개개인의 참여가 이뤄져야 한다. 기회를 준다고 모두가 최선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최선을 다하나 기회가 없는 자에게 우리는 도전하는 무대를 마련해줘야 한다. 개인과 사회적 노력이 한 데 어우러져야만 우리는 일류 국가로 넘어갈 수 있다.

 충남도립대학교는 기회가 없지만 최선을 다하는 인재들을 위한 무대가 되고자 한다.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게는 반드시 보상이 돌아가며, 이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가능성이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나가는 게 도립대의 의지다. 충남 변방의 작은 대학이지만 우리의 도전과 노력이 대한민국 교육 방향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회적 논의의 출발선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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