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근 대전시의원

매년 음력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전국에서 연등 행사가 열린다. 애당초 연등제는 등불을 밝혀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식에서 비롯됐다. 그러다가 번뇌로 가득한 어두운 세계를 부처님의 지혜로 밝게 비춘다는 의미가 더해졌다. 연등은 처음엔 꽃, 향, 의복, 장식 깃발 등과 함께 여러 가지 공양물 중 하나였다. 점차 불교 행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비중이 높아졌다. 지금은 불교계의 가장 큰 행사로 연등 공양이 구심점을 이룬다.

우리나라 연등 행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통일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문왕 6년(866) 정월 보름에 왕이 신라 최대의 국가 사찰 황룡사로 행차해 등불을 구경하고,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고 삼국사기에 등장한다. 겨울에 열리는 팔관회와 함께 국가적인 행사로 열렸다.

연등회를 국가적인 행사로 법제화한 것은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 때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 국가가 주관하는 연등제는 폐지되었어도 민간의 연등은 이어졌다. 1975년부터 석가탄신일이 공휴일로 제정됐다. 이듬해 연등행사가 부활해 여의도광장에서 조계사까지 불교 신자들의 제등행진이 시작됐다.

2020년 유네스코는 연등회를 인류 무형 유산에 등재했다. 연등회가 시대를 지나며 바뀌어 온 포용성으로 국적·인종·종교·장애의 경계를 넘어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점, 사회적 경계를 일시적으로 허물고 기쁨을 나누고 위기를 극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 등을 높이 평가했다.

부처님이 오신 이유는 모든 중생이 주인공임을 전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연등을 밝히는 것은 단지 부처님의 공덕을 칭송하기보다 더 많은 뜻을 담고 있다. 무명(無明)을 깨우친 지혜로운 삶, 이웃을 위해 나눔과 배려하는 삶을 보내라는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혼란스러운 그야말로 야단법석(野壇法席) 같은 시국이다. 수만 등불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켠 보잘것없는 등불 하나가 가장 빛났다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이라는 말이 그 어느 해 보다 더욱 소중하게 와닿는 때다.

한 가지 제안을 해본다. 현재 대전 연등축제는 일회성 행사다. 매년 연등 행사에 출품하는 연등을 활용해, 대전천 양안이나 대동천 양안에 설치한다면 어떨까? 부처님 오신 날을 전후해 1주일에서 열흘 정도 전시한다면, 시민들에게 적은 비용으로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 줄 것이다.

유사한 예도 몇 군데 있다. '서울 빛초롱축제'는 청계천 일대에서 등을 주제로 펼쳐지는 축제다. 2009년 '서울 등 축제'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2015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2019년까지 11년 동안 누적 관광객 2500만 명을 기록했다. 서울 노원구 등 축제는 매년 4월말에서 5월초 당현천 일대에서 열린다. 당현천은 대전 동구를 관통하는 대동천과 매우 유사한 건천이다. 해를 거듭하면서 노원구청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 명실상부한 주민 축제이자 대표 축제가 됐다.

오늘날 연등회는 대한민국 국민뿐만 아니라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까지 즐길 수 있는 행사로 발전하고 있다. 연등 행렬 또한 계속 변화하고 있다. 아기공룡 둘리에서부터 손오공, 저팔계, 심지어 로봇 태권V가 불경을 들고 등장하는 등 불교가 연관 없는 캐릭터들도 등장했다. 근엄함과 체통만 외쳤다면 절대로 등장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다.

나는 소망한다. 시민 한 분 한 분의 마음속에 자비의 등불을 켜고, 그 등불들이 모여 대전을 밝히고, 세상을 더욱 아름답고 평화롭게 밝혀주기를. 연등축제가 단순한 불교 행사를 뛰어넘어 시민 화합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시민축제로 자리 잡게 될 날을 손꼽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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