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태 대전 서구청장

죄송스럽게도 아버지의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오랫동안 병석에 계셨던 아버지는 내가 여덟 살이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너무 어렸으니 생전의 얼굴을 떠올리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위로하면서도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불효자라는 생각에 늘 마음 한편이 무겁다. 그래도 6남매 중 거의 유일하게 아버지와 겸상을 하던 장면, 넘어졌을 때 일으켜주던 아버지의 따뜻한 손길은 기억에 선명하다.

어머니는 늘 새벽에 집을 나섰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골목을 다니며 채소와 생선을 팔았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이튿날 또 새벽같이 일어나 행상을 다녔다. 그렇게 고된 시간을 보내면서도 어머니는 새벽마다 거르지 않고 따뜻한 밥을 지어 놓고 나가셨다. 행상에서 돌아올 때면 사탕이나 과자를 우리 손에 쥐여 주셨다. 5년 전 눈을 감으신 어머니에게 맛있는 걸 더 자주 사드리지 못해 늘 죄송하다.

8일은 어버이날이다. 이맘때면 요양원이나 노인복지 시설을 들러 어르신들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린다. 비록 코로나19로 올해 어버이날 행사는 취소되었지만, 카네이션 한 송이 달아드리는 일까지 거를 수는 없다. 거동이 불편해도 그때만큼은 주름진 얼굴에 밝은 미소가 번진다.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 부모님들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주름마다 깊이 새겨진 인생의 무게가 전해진다.

사회가 변하면서 효의 의미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우려스러운 점도 적지 않지만 어르신들의 건강과 복지를 공적 영역으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확대되고 있는 점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우리나라의 저출산·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특히 그렇다. 실제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 고령화사회(65세 인구 비중 7% 이상)로 진입한 후 2018년 고령사회(14% 이상)가 됐다. 이런 추세라면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20% 이상) 진입이 유력하다고 한다.

대전 서구는 이러한 사회현상에 대응하고 어르신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발굴해 시행 중이다. 마침 어버이날을 며칠 앞둔 지난 4일 준공한 갈마노인복지관도 이러한 노력으로 거둔 결실 중 하나다. 총 46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이곳에서는 노인대학, 취미·정보화 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사계절 이용 가능한 실내 게이트볼장도 갖춰져 있다. 지역 어르신들의 건강한 노후 생활에 기여하는 ‘어르신 청춘회관’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어르신만이 아니라 가족과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인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노력도 열매를 맺고 있다. 서구는 지난 4월 유니세프(UNICEF)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았다. 2019년 1월 관련 조례 제정을 시작으로 전담부서 신설, 아동권리 옹호관 위촉 등 아동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땀 흘린 결과다. 특히 아동·청소년 구정참여단, 마을 어린이·청소년위원회 발족 등을 통해 지역 아동의 목소리를 구정에 직접 담을 수 있는 체계도 구축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등 가족과 가정의 소중함을 돌아보는 날이 이어진다. 이맘때가 되면 이제는 볼 수 없는 어머니와 아버지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게 사실이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사모곡을 부르는 대신 어르신과 아동이 더 살기 좋은 서구를 만드는 일이 그동안 다하지 못한 효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좋은 행정을 펼치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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