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순 대전시 자치분권과장

국가는 사회에 존재하는 갈등을 해결하고 국민의 자유와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고 있다. 우리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국가는 독재와 탄압의 주체에서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보장하고, 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보호하는 주체로 변화해 오고 있다.

다만, 대한민국 정부 시작 이후 많은 국민들이 이념 갈등 속에 희생돼 왔고,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4·19혁명부터 이어진 민주화 역사 속에서 흘린 수많은 대중들의 피와 땀이 바탕이 됐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은 여전히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다. 대전 동구 산내동 곤룡골 민간인 학살도 현재 진행형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대전 형무소에 수감돼 있는 정치범들을 산내 곤룡골로 이송해 집단 학살하고 암매장했다. 미국립 문서보관소나 종군기자의 보도, 증언 등에 따르면 희생된 사람은 당시 보도연맹, 여수·순천 사건 관련 정치범은 물론 여러 지역에서 이송된 민간인들을 포함해 적게는 4000명에서 많게는 7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6일까지 짧은 기간 동안 벌어졌던 국가 폭력은 이후 50여 년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2000년부터 매년 위령제가 개최되고 있지만 산내 곤룡골이 한국전쟁 당시 국가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는 사실을 대전시민 조차 대부분 모르고 있다,

다만, 다행히도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재평가하고 추모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000년 몇 몇 활동가에 의해 국가 폭력의 역사가 다시 세상에 드러난 이후 2007년부터는 국가 차원에서 유해 발굴 작업이 시작됐으며, 2010년 7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의해 군인과 경찰에 의한 집단학살로 공식 인정됐다.

현재까지 288구의 희생자 유해가 발굴, 세종 추모의 집에 임시 안치돼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났고, 최소 4000여 분이 희생된 것에 비하면 상처의 회복을 위한 노력이 더디기만 했다.

하지만 2016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단위 위령시설 조성을 위해 진행된 국가 공모사업에 산내 곤룡골이 선정돼 2018년부터 '산내평화공원'이라는 이름의 추모시설 조성이 진행되고 있다.

2024년 문을 열게 되는 산내평화공원은 민간인 학살, 집단 매장 지역을 대상으로 한 희생자 유해 발굴과 함께 9만 8601㎡ 규모의 공원 및 추모 기념관이 건립된다.

하지만 시설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바로 아픈 상처가 낫고, 유가족들의 한 맺힌 가슴이 풀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먼저,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사과가 있어야 하며, 그 다음으로는 아픈 역사를 애써 무시해 온 무관심에 대한 반성, 마지막으로는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의식과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 조만간 산내평화공원이 제 모습을 갖춰갈 것이다. 산내평화공원이 단순한 추모시설을 넘어 국가 폭력에 대한 반성과 민주주의를 지켜내겠다는 확고한 다짐의 기회이자 미래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교육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

이를 위해 대전시는 유해 발굴 작업은 물론 설계와 건축의 과정에서 적극적 지원과 함께 국가 폭력의 역사를 대전 시민들과 전 국민에게 알리는 일에 매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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