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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春秋時代) 중엽(中葉) 중원의 맹주 진(晉)나라의 도공(悼公)에게는 위강(魏降)이라는 충직한 장수가 있었는데 그는 특히 법과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기로 이름이 높았다.

어느 날 진도공(晉悼公)의 동생 양간(楊刊)이 군영에서 질서를 어지럽히자 위강은 양간을 대신해 마부의 목을 베어서 군사들에게 법의 엄정함을 본보기로 삼았다.

이에 양간은 형인 진도공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지금 위강은 안하무인(眼下無人)이어서 감히 제 마부를 목 베어 왕실을 욕되게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진도공이 진노해서 당장 위강을 잡아들이라 명했다.

그러자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양설적(羊舌赤)이라는 신하가 위강을 옹호했다.

“위강은 충직한 신하입니다. 그가 일을 저질렀다면 반드시 그럴만한 연유가 있을 것입니다.”

양설적의 말을 듣고 비로소 이성을 되찾은 진도공이 내막을 자세히 조사해 보니 동생의 잘못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진도공은 위강을 더욱 신임하게 됐다.

어느 해 진도공은 약소국을 침범하고 국제 협약을 무시하는 등 신의가 없는 행동을 하는 정(鄭)나라를 응징하기 위해 12개국의 연합군을 결성해 위강에게 지휘를 맡겼다.

다급해진 정나라가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고 진도공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전쟁이 초기에 종식됐다.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정나라는 각종 진귀한 보물과 여러 명의 미회를 진나라에 보내 사례했다.

진도공은 이를 받아서 그중 일부를 이번 일에 공이 큰 위강에게 내리자 그는 정중하게 사양하며 말했다.

“이번 승리는 동맹국을 소집하신 전하의 탁월한 능력 때문입니다. 신은 다만 전하의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바라옵건대 편안함을 누릴 때 대비할 일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 주십시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편안하게 지낼 때는 항상 장차 있을 수 있는 위태로움을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생각하게 되면 항상 준비가 있어야 하며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근심과 재난이 없을 것입니다(거안사위 거안즉유비 유비무환:居安思危 居安則有備 有備無患)”라고 3번이나 사양한 다음 그 하사품을 받았다.

위강은 이렇게 일시적인 성과에 마음이 풀어진 왕을 일깨웠다.

위강의 말을 들은 진도공은 정나라가 보내온 선물과 미녀들을 돌려보냈다. 이 이야기는 좌전(左傳) 양공(襄公) 11년에 나왔다.

성어(成語) 거안사위(居安思危)는 이처럼 위강이 한말에서부터 유래한 것이며 유비무환(有備無患)도 이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국전서예초대작가및전각심사위원장·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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