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 수필가

 보라색 제비꽃이 곱다. 작고 소박한 꽃송이가 내 어머니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머리에 흰 수건을 쓰고 들과 집을 바삐 오가던 모습이 선명하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잠시라도 쉬게 할 요량으로 심부름을 가장한 외출을 보내곤 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대문을 나서던 당신의 모습이 마치 보라색 제비꽃처럼 고왔다.

 제비꽃이 다치지 않도록 돗자리를 편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카스텔라와 아버지가 좋아하는 약주 그리고 배추전과 명태전도 접시에 담는다. 생전에는 입에도 대지 않았던 약주를 어머니 전에도 올린다. 두 분이 이곳을 보금자리로 삼은 지도 삼십 년이다. 올해부터는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는 큰오빠의 말에 서운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두 분을 자주 찾아뵈니 이것도 좋다.

 산소 주변은 온통 초록빛이다. 붉은 흙이 살점처럼 들어나 보기 흉하던 쪽도 잔디가 푸르게 자라고 있다. 이제 자식 걱정을 덜고 편안함에 들었단 뜻일까. 터를 넓히던 찔레 덩굴도 사정없이 올라오던 잡초도 그만하다. 태풍처럼 휘몰아치던 자식의 가슴이 잠잠해지기까지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언니 오빠는 생전 두 분의 나이를 훌쩍 넘었고 막내가 그 나이에 이른다. 서리 맞은 초목처럼 시들어가던 자식의 마음도 제 모습을 찾고 있으니 세월이 약인가 보다.

 제 터를 지키겠다는 일념일까. 잔디의 모습과 흡사한 잡초가 곳곳에 숨어있다. 얼마나 끈질긴지 해를 거듭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부모님 생각을 쉬이 떨치지 못하는 나의 모습만 같다. 잡초와 한동안 씨름하고 천근처럼 무거워진 몸을 두 분과 나란히 눕는다. 음식을 산소 주변에 고수레하고 나의 허기진 배도 채운다. 버릇없이 누워서 먹는다고 호되게 야단을 맞고 싶다. 하지만, 두 분은 자식이 먹는 모습에 뿌듯해하리라. 이 또한, 산 사람의 생각일 뿐이리라.

 어머니가 가신 그날도 새벽부터 많은 비가 내렸다. 오늘도 비가 내린다는 예보였지만, 다행히 맑고 푸른 하늘도 흘러가는 하얀 구름의 풍경도 평화롭기만 하다. 어제 내린 비로 땅이 촉촉하여 풀을 뽑기가 수월하다. 몸을 일으켜 뽑아놓은 잡초를 정리한다. 작은 녀석이 불쑥 제비꽃은 왜 뽑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건 '할머니를 닮은 꽃이니 그냥 두자'라고 말하니 '역시 이쁘고 봐야 해'라는 녀석의 응수에 한바탕 웃는다. 그래, 할머니를 닮은 제비꽃은 고우니 그냥 두고 보자. 목단꽃은 잎만 무성하고 꽃을 피울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산골의 찬 기온 탓이리라. 열흘 뒤 아버지의 기일에는 꽃을 피우려나.

 마음이 수런거리는 날은 유독 당신 품이 그립다. 그 품에 안겨 잠이 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이제 성인이 된 내 아이들과 두 분 손을 잡고 나들이도 가고 싶다. 그 마음을 아는 듯 제비꽃이 잔바람에 가느다란 줄기를 흔들어 나를 다독인다.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그리움만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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