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만 한서대학교 교수

2014년 4월 16일 인천항에서 476명의 승객을 태운 세월호가 제주도로 향하던 중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인근 앞바다에서 전복돼 침몰했다.

이날의 사고로 세월호에 탑승했던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을 포함해 희생자는 295명, 실종자는 9명이 발생했다. 참사가 일어난지 올해로 7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실 규명은 요원하다. 목숨을 잃은 어린 학생들의 영혼과 유가족을 위해서라도 확실한 규명이 이뤄져야 끝나지 않을까.

‘세월호 우려먹는다’, ‘노란 뱃지 지겹다’, ‘시체놀이 집어 치워’ 등 누군가 말한 이런 얘기의 뉴스를 보면 세월호 참사마저도 정치 논리로 이용하려는 세력들이 있다는 데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그들의 자녀가 사고를 당했어도 시체놀이 운운했을까? 세월호는 단원고 학생을 포함한 304명이 사망·실종된 대형 참사였다.

현재까지 밝혀진 원인으로 화물 과적, 고박 불량과 더불어 무리한 선체 증축, 조타수의 운전 미숙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잠수함 충돌설, 고의 침몰설 등 여러 가지 가설들이 아직까지 난무하고 있다.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밝힌 선내 CCTV의 영상녹화장치가 조작됐다는 의혹과 출항 시각 인천항의 안개로 많은 선박들이 출항을 포기했음에도 유독 세월호만 왜 2시간 30분이나 늦게 출항했는지… 아직도 이해 안 가는 구석이 한 두군데가 아니다. 미국은 뉴욕 맨해튼 다운타운 한복판에 9.11사태로 희생당한 3000명이 넘는 희생자의 이름 하나하나를 벽면에 새긴 추모공원을 만들었다. 우리는 국민의 희생 앞에서 여·야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미국의 그런 점을 배워야 한다. 내가 세월호 참사에 더 민감한 이유는 생각하기 싫은 사건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38분경 성수대교가 갑자기 붕괴돼 당시 사고로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다쳤다. 특히, 그 날은 평일이라 이른 아침 통학길에 오른 여고 학생들의 피해가 커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 때 내 아내는 차병원을 다니다 심한 임신 진통으로 그만두고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만약 진통이 없었다면… 생각도 하기 싫을 정도로 섬뜩하고 오싹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정부는 시설물안전특별법을 제정했다.

학계에 따르면 그 때 제정된 특별법은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안전법으로 정평이 났다.

1999년 6월 30일 경기도 화성군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 유치원생들과 초등학생들을 포함해 2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마침 큰딸이 다니던 유치원에서도 씨랜드로 연수를 가기로 했다 취소돼 화를 면했지만, 끔찍한 사고현장을 TV로 보면서 그저 딸을 끌어 앉을 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한 유가족의 인터뷰에서 ‘죽어야 고통이 끝날 것’이라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정부는 씨랜드 18주기 추모식 때 추모공원을 만들겠다는 당찬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곳엔 위령비 하나 없다. 성수대교 붕괴, 씨랜드 화재는 정확한 사고원인 규명으로 특별법 제정과 스티로폼 샌드위치 패널 금지법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다.

이에 반해 세월호는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원인 규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고칠 건 과감하게 고쳐서 더 이상 국민의 생명이 위험에 빠지는 일이 없기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