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수 ETRI 기술상용화센터장

‘인턴’이라는 할리우드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여기서 로버트 드니로는 40년 이상 전화번호부 제작회사에서 판매부장으로 일하다 은퇴한 70세의 노년을 연기한다. 퇴직 후 모처럼의 여유와평안함이 지속되면 좋으련만, 몇 주도 지나지 않아 정작 그를 찾아 온 것은 지독한 삶의 무료함이다.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지만 집에 도착하는 순간, 또다시 고독과 지루함이 기다리고 있다.

뭔가 잉여 인간이 돼버린 듯한 느낌. 고민 끝에 그는 한 인터넷 창업회사의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처음에는 낯설고 서먹했지만, 인생의 풍랑 속에서 어찌할 바 모르는 30대의 여성 CEO의 파트너가 돼 삶의 지혜를 공유하며 그의 인생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끼게 되고, 여성 CEO도 사업과 개인의 삶에서도 제자리를 찾는다. 영화에서 로버트 드니로는 그나마 70대였지만, 우리나라의 직장인 대부분은 60세를 전후해서 퇴직을 맞는다.

최근 들어 정년을 좀 더 연장하려는 논의가 있기는 해도 아직 찬반이 팽팽하다.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논의에 그들의 역량이나 가치에 대한 고려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대체로 국민연금의 고갈이나 청년 일자리 문제 등과 같은 외적 이슈들이다.

한편에서는 우리나라의 노인 인구 증가 속도가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빠르고, 노인빈곤율도 1위라며 아우성친다.

다른 한 편에서는 출산율이 작년에 0.84명으로 OECD 국가 중 꼴찌라며 대책 마련을 요구한다.

그런데 여기서도 대책의 초점이 노후대책이나 출산장려책과 같이 각각 다루어질 뿐이다. 물론 이들 대책도 필요하겠지만 단기간에 해결될 사안은 아닌듯하다.

그런 면에서 바로 적용 가능한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특히 변화의 속도에서 그 이전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전개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서라면 그 해법도 이에 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대안 중의 하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퇴직 이후의 인력들과 출산율의 저하로 줄어들고 있는 청장년 인력들이 보유하고 있는 역량들을 서로 연계하고 결합하는 것이다.

독일의 저명한 두뇌 연구가 게르하르트 로트는 최근 연구에서 “노년층이 청년층과 비교하면 주의력과 정보처리 속도는 떨어지지만, 지식과 경험 및 숙련도의 증가로 정보처리 속도의 감소를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우리가 속도라고 하면 주로 젊은층이 보유한 집중력, 열정이나 에너지에 기반한 정보처리 속도 등에 초점을 맞추지만, 속도는 단순히 그것만으로 정의될 수 없다는 말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젊은층이 가진 정보처리 속도와 노년층의 잘 정리된 지식과 경험을 결합할 필요가 존재한다.

마치 성능 좋은 컴퓨터만으로 제대로 된 데이터 없이 업무성과를 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특히 그것이 기술 분야라면 해당 기술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의 지식과 경험을 축적한 노련한 전문가의 도움은 말할 것도 없다.

정부출연연구원의 퇴직연구자들이나 기업 일선에서 퇴직한 개발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특히 그들의 역량은 연구계는 물론이거니와 이제 막 기술을 기반으로 기업을 시작한 수많은 벤처기업들과 연계될 경우 성공에 결정적인 시너지를 창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식과 경험의 미숙이 가져올 시행착오를 지혜롭게 피하면서, 조기에 기술개발에 성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이런 시너지가 여기저기서 연쇄적으로 일어나게 하려면 영화 ‘인턴’에서 시니어 인턴프로그램과 같은 퇴직 시니어와 연구계 혹은 기업계를 연결할 수 있는 연계 프로그램이나 플랫폼을 더욱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퇴직연구자들과 기술개발자들을 나이라는 일률적인 잣대가 아닌 고경력 전문가로 제대로 대우하는 인식 전환 노력이 급선무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점점 더 거세지는 제4차산업혁명의 파고조차도 슬기롭게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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