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수필가

오랜만에 동화 한편을 읽었다. 오래전 미호강에 서식했던 미호종개와 민물고기들의 생태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상상의 이야기로 엮은 김정애 작가의 "안녕, 나야 미호종개"다.

이 책을 손에 집어 든 순간 몇 십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추억에 잠겼다. 나도 이 책을 쓴 작가처럼 금빛 모래톱과 은빛 물결이 반짝이던 미호강이 내려다보이는 마을에서 유년을 보냈다. 강섶의 들꽃처럼 지난날의 기억들이 강물과 두두 물물 어우러져 고즈넉하게 바라보이는 그곳이 미호강이다. 넓은 바다를 볼 수 없던 유년의 여름날 추억들을 소복이 묻어 놓은 곳이 천변의 모래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친근하고 정이 가는 그곳. 버들치, 쏘가리, 대농갱이 등 이름은 일일이 알 수 없지만, 물속에서 그 많던 물고기들과 조개는 여름날이면 그냥 어우러져 함께 놀았던 친구이자 놀이감이었다.

지금도 가끔씩 마음이 헛헛해질 때면 길섶의 작은 들꽃과 수풀사이에서 철새들이 이질감 없이 어우러져 노니는 풍광이 그리워 미호 강변길을 걷는다. 강물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한곳을 향해 흐르지만, 망초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강변 묵정밭은 보이지 않는다. 언제부터 쌓았는지 내 키를 훌쩍 넘는 반듯한 사각 틀 단석이 강물과의 조우도 쉽게 허락하지 않고 버들강아지 늘어진 아래로 반짝이던 금빛모래톱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어릴 적 오금을 졸이며 아슬아슬하게 건너던 강다리도 오래전에 없어졌다. 옛적의 한유를 추억할 틈도 없이 강가에 선 나는 곳곳에 세워진 신문물인 대교의 웅장함과 그 위를 쉼 없이 달리는 자동차 굉음에 되레 위축되고 만다. 그 많던 놀거리와 볼거리로 사계의 향연을 아리답고 한가롭게 펼치던 미호강은 이제 비련의 추억 한 자락으로 가슴에 묻어야 하는 것이 마땅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사라질지도 모를 세상의 모든 여린 생명들에게……."

사라진 별들도 그 많던 민물고기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던 강변의 수풀들도, 모래톱도 다시 되살려야 함이 마땅하다는 작가의 첫머리 외침이 마음을 울린다. 더 넓고 먼 세상을 동경하며 바다를 찾아 떠났다가 결국 미호강 여우내로 다시 돌아온 스타 물고기와 옛날을 그리워하며 강가를 서성대는 내 모습이 닮아있어 책을 손에서 쉽게 놓을 수 없었다.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과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혼동하며 사는 지금의 내가 아닌지 흐르는 강물 앞에서 유추해본다.

땡볕내리는 강둑에서 아무렇게나 피어난 망초 꽃 한 송이에도 아련한 추억을 담고 헤아리지 못할 만큼 그 많이 번뜩이던 작은 생명들과 물속을 헤집으며 유영하던 미호 강의 천진한 여름날을 언제쯤 다시 마주할 수 있을는지. 강 섶 몇 군데 남은 작은 모래톱은 아주 먼 옛날 추억을 소복이 묻어둔 작은 아이를 아직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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