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호 충남소방본부장

아이가 넘어져 울고 있을 때 바로 일으켜 세워 주기보다는 혼자서 일어날 수 있도록 지켜만 보는 것이 자립심을 기르는데 좋다는 말도 있다. 크게 다치지 않았고 혼자서 일어날 수 있다면 그것이 옳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와는 다르게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기초생활조차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문제를 국가와 사회의 책임으로 해소코자 하는 노력이 사회복지다.

그러나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되고 사전 평가를 거친 정책이라고 할지라도 완벽할 수 없는 것처럼 종종 복지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안타까운 소식에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다. 혹자는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했어야지 그런 지경에 이르기까지 주변에서도 모르게 숨어 살았냐고도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말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 개별적으로 서로 다른 사연이 있기 때문에 결과만 가지고 판단하기에는 섣부를 수 있다.

우리 소방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오래전부터 많은 고민을 해왔다. 소방기관이 전통적인 의미의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주무 기관의 범주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안전권이 국민의 기본권으로 명시돼야 한다는 주장이 상당 수준으로 논의되고 있다. 또한 안전이 국민의 행복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안전복지’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되었으며 사회복지의 최일선에 기초자치단체나 복지시설이 있는 것처럼 안전복지의 최일선에는 소방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체·경제적 약자일수록 위험과 사고로 인한 피해의 심각성은 더 크다. 사실 위험사회의 양극화라는 논리적 근거를 대지 않더라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화재로 집을 잃었을 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처하는 상황은 천양지차다. 소방관들은 이러한 현장을 늘 접하기 때문에 사회복지사가 느끼는 감정과 유사한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현장 활동을 하다 보면 불치병으로 중증장애인이 되어 수십 년을 누워 지내면서도 병원 한 번 제대로 갈 형편이 안 되는 기초생활수급자, 한겨울인데도 기름값을 아끼려고 냉골에서 살고 계신 홀몸 어르신 등을 많이 만나고 있다.

그래서 충남의 소방공무원과 의용소방대원들이 손을 잡았다. 이웃의 어려움을 안타까워만 하지 말고 작더라도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돕자는 취지에 모두가 공감한 것이다. 매일매일 119원을 기부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필요한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낯부끄러울 정도로 작은 돈이다. 하지만 십시일반이라고 수천명이 참여하니 모인 기금은 적지 않은 도민을 도울 수 있을 만큼이 되었다. 이 사업의 명칭도 힘을 내서 함께 살자는 의미의 충청도 말로 ‘가치가유 충남119’로 정했다. 특히 충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한국해비타트 충남세종지회도 뜻을 함께해 파트너로 일하게 되었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듯하다. 이제는 일반 도민들도 동참 의사를 밝히며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 함께 사는 공동체 사회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여럿이 힘을 모아 함께 손 잡고 가면 길은 열릴 것이다. 그것이 ‘가치가유’의 정신이고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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