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투데이] 코로나19 장기화로 '비대면'은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마스크는 필수 생필품이 됐으며 어딜 가도 손 소독제와 체온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비대면이 생활 속에 스며들면서 직접 만남을 갖는 것보다 전화 통화와 메시지로 안부를 주고받는 게 당연해졌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이런 영상통화 기능을 적절하게 이용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얼굴을 보고 싶다면 직접 만나서 대화하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굳이 영상통화 서비스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직접 만나는 것보다 비대면으로 안부를 묻는 게 배려와 애정의 표현이 된 세상이 왔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재난문자 알림음이 울릴 때면, 부모님을 찾아뵙기보단 안부전화를 더 자주 드리게 됐다. 그러다 영상통화를 썩 좋아하지 않았던 나도 영상통화를 자주 사용하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하루는 어머니와 전화를 하다가 영상통화가 필요한 상황이 왔었다.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고 영상통화 전환 버튼을 눌러 얼굴을 보여드리자 필요했던 일의 해결보다 화면 너머로 얼굴에 화색이 피는 어머니의 얼굴이 더 눈에 들어왔다. 요즘엔 직접 만나도 마스크로 가린 얼굴을 보곤 하는데, 오히려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화면을 통해 맨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아이러니도 느꼈다. 그러다 어머니께서 영상통화 거는 방법을 넌지시 물어보셨다. 그 후 부모님과의 안부전화는 처음부터 영상통화거나, 일반 전화로 얘기를 하다가도 영상통화로 전환하여 끝내게 됐다. 떨어져 있지만 거의 매일 얼굴을 보게 된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시간을 내서 직접 찾아봬야겠다는 다짐을 했겠지만, 특수한 시대인 탓에 영상통화가 내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큰 효가 됐다. 이렇게 좋아하실 줄 알았다면, 코로나19 이전의 전화에서도 얼굴을 보여드릴 것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시간을 내어 부모님을 직접 찾아뵙는 것이 가장 큰 효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다. 대면보다 비대면이 당연해진 지금, 영상통화로 안부를 전하는 우리의 행동에서 효의 의미가 바뀌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우리가 처한 상황에 따라 효의 표현 방법은 달라질 지라도 그 행동을 하게 만든 마음가짐은 예전이든 지금이든 모두 부모님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효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코로나19가 만든 언택트 시대, 기기와 기술의 발전 덕에 멀리서도 부모님께 얼굴을 보여드리고 효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그러나 동시에 보고 싶을 때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이고 감사할 일이었는지도 새삼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이 돌아오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성지원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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