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태 대전 서구청장

소녀는 죽음을 예감했을까?
거리에 나가기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혈액 정보와 연락처, 시신 기증서를 남겼다고 한다.
결국 소녀는 지난 3일 시위 도중 머리에 총탄을 맞고 숨졌다.
그녀가 입은 검은색 티셔츠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야(Everything will be OK)."
미얀마의 19세 소녀 키알 신의 안타까운 사연이다.
미얀마의 쿠데타 반대 시위와 유혈 진압 소식이 속보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가 경험했던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교훈을 새삼 일깨워 주는 듯하다.

우리에게도 촛불 시민혁명과 6·10민주화운동이 있었고 많은 사람이 총칼에 쓰러진 5·18광주민주화운동과 4·19혁명이 있었다.
그 선두에는 늘 청년들이 있었다.
마침 엊그제는 4·19혁명의 불씨가 된 대전 3·8민주의거 기념일이었다. 2월 28일 대구에서 고등학생들의 대규모 시위가 있었고 120여 명이 연행되었다는 흉흉한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도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대전의 고등학생들도 술렁였다.
3월 8일, 마침내 대전고 학생 1000여 명이 교문과 학교 담장을 넘어 거리로 나왔다.
이들은 결의문을 선포하고 대정부 투쟁을 선언하며 공설운동장까지 시가행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해 수십 명의 학생이 경찰에 연행됐다.
3·8민주의거는 대전의 청년들이 자유당 독재정권의 부정부패와 인권에 대항하고 민주·자유·정의 수호를 위해 항거한 민주화 운동이다.

충청권 최초의 학생운동이자 대전지역 민주화 운동의 효시로도 불린다. 그런데도 오랜 시간 역사적 가치를 평가받지 못하다가 지난 2018년 국내 49번째(충청권 최초)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대전 3·8민주의거를 기리는 기념탑이 서구에 있다.

둔지미공원을 가끔 찾는다.
봄이면 형형색색 꽃이 만개하고, 가을이면 울긋불긋 단풍이 물든다.

그곳에 우뚝 솟은 기념탑을 보면서 시대정신과 대전정신을 떠올린다. 61년 전 두려움 없이 불의에 항거했던 고등학생과 대전 시민들의 용기를 느끼곤 한다. 지난 1월 초 2021년 신축년 새해 업무를 시작하면서 3·8민주의거 기념탑에 참배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천둥하는 몸짓 출렁였다. 가슴 터지는 아우성 드높았다. (중략) 시대의 검은 장막을 뚫고 저 눈부신 하늘 향해 증언의 얼굴로 탑이 서다."

3·8민주의거 기념탑 후면에 새겨진 시 구절이다.

대전 시민들은 도전과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불굴의 의지와 용기로 맞섰다.

코로나19 위기에서 보여준 수준 높은 시민의식도 거슬러 올라가면 3·8민주의거에서 보여준 대전정신과 맞닿아 있다. 그런 시민들이 있기에 코로나19라는 검은 장막도 걷힐 날이 머지않았음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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