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윤수 대전을지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 외과 교수

수술실 시계의 작은 바늘이 1과 2 중간에 있다. 피가 뿜는 혈관을 잡고 터진 장을 꿰매어 다행히 한시름 덜었다. 수술은 큰 고비를 넘겼고, 나머지만 잘 마무리하면 된다. 한 생명을 살렸다는 안도감에 잠시 긴 한숨을 내쉬고 주위 사람들을 보았다. 나를 제외하고 총 여섯 사람이 이 공간 안에서 한 생명을 위해 깨어 있다. 모두 다 잠든 이 시간에 말이다. 수술 중 혈압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주는 마취과 선생님과 마취과 간호사,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수술기구를 잽싸게 건네주는 간호사들이 도와줘 1초라도 빨리 피가 나는 곳을 잡을 수 있다. 환자 배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두 명의 선생님께서도 수술을 도와주고 있다. 두 시간 동안의 사투가 마무리되고, 환자는 외상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환자 옆을 떠나지 않고 지켜주는 중환자실 의료진들이 있어 보호자들은 중환자실 철문 안에서 환자가 금방 회복될 것이라 믿고 있을 것이다.

응급실에서부터 수술실, 중환자실로 가기까지 환자는 계속 수혈을 하고 있다. 누군가 헌혈한 피를 혈액은행 선생님이 하나씩 혈액 적합성 검사를 한 후 환자에게 건네준다. 급히 필요한 혈액을 혈액은행에서 직접 건네받고 뛰어서 가져다주시는 분이 있기에 환자는 더 살아날 힘을 얻는다. 그리고 이 환자가 떠나고 피로 흥건하게 젖은 수술실 바닥을 깨끗하게 닦고 청소하시는 분이 있기에 또 다른 환자가 이 수술실에서 목숨을 구할 수 있다.

중환자실로 옮긴 후 환자 얼굴과 안정된 모니터 숫자를 보니 응급실로 환자가 실려 온 상황이 떠오른다. 환자는 주말 심야에 이곳으로 왔다. 혈압이 뚝뚝 떨어지는 환자를 119구급 대원들이 신속하게 권역외상센터로 이송해줬다. 열 명 가까운 응급실 의료진들, 인턴, 간호사, 응급구조사 선생님들과 외상센터 선생님들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초기 처치를 했다. 다친 부위를 알 수 있도록 CT, X-ray 검사를 신속하게 해주는 영상의학과 선생님들이 있어 빠르게 수술 결정을 했다. 방금 전 수술실 안에 있던 단 일곱 명뿐만 아니라 수십 명의 권역외상센터 관계자들이 있기에 이 환자는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지금으로부터 강산이 두 번 넘게 변하기 전의 일이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밤 12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했었다. 아침 8시부터 학교 일과가 시작되어 깨어있는 모든 시간을 친구들, 선생님과 함께 했다. 고3 수험생이던 어느 날, 나는 새벽부터 학교 대신 서울로 무박 1일간 떠나 무단결석을 한 후 늦은 밤에 돌아온 적이 있었다. 담임선생님께선 매서운 회초리나 야단 대신 말없이 감싸주시고 오히려 격려해 주셨다. 담임선생님은 선생님인 동시에 고등학교의 선배님이셨다. 남들 다 잠든 시간에 가족보다 제자, 후배들을 위해 노력하고 밤에도 일하시는 선생님이 계셨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 드린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당시 담임선생님의 나이가 됐다. 선생님처럼 나도 남을 위해, 이렇게 남들이 잠든 시간에 일하고 있다. 그 당시 선생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행하신 것처럼, 나와 이곳 대전을지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의료진들도 환자와 환자의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밤에도 깨어있는 것이다.

어느 정치인이 연설 중 새벽 4시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보통 사람들처럼 8~9시 출근이 아닌, 새벽 4시 첫차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버스에는 아들딸 같은 수많은 직장인들이 다니는 빌딩을 청소해주시는 분들이 대부분 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사회는 이런 분들의 존재를 잘 모르거나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만 같다. 사회는 누군가 잠든 시간, 그리고 잠에서 깨려고 준비하는 시간에 남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런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아직은 살만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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