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 수필가

다행히 빨간 신호등에 차가 멈췄다. 옆 차로 다가가 경적을 울리니 운전자가 뭔 짓이냐는 듯 쏘아본다. 손을 내밀어 차 문을 열어보라 시늉하니 여전히 마땅찮은 표정으로 유리창을 내린다. “바퀴 펑크 났어요. 계속 달리면 휠도 망가지고 위험해요”라는 말을 듣고서야 화들짝 놀란다. 갓 스무 살을 넘은 듯 보이는 운전자의 모습에서 예전의 내 모습을 떠올린다.

꼭 그 탓만은 아니었다. IMF와 더불어 승승장구하던 사업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듯 멈출 줄 모르고 내리막길을 달렸다. 고민 끝에 사업을 정리하고 남편은 새로운 일을 찾아 서울로, 나는 시부모님과 아이들을 책임지고자 트럭을 몰고 시장으로 향했다. 새벽시장에서 부식을 받아 식당에 납품했다. 체면은 벗어던졌다. 동이 트기 전 집을 나서 경매가 마치기를 기다리다 필요한 식자재는 재빨리 트럭에 실었다. 그날도 트럭에 식료품을 가득 싣고 달리는데 옆 차선 운전자가 다급한 손짓으로 불러 세웠다. '무슨 일일까. 내가 뭘 잘못했나'라고 생각하며 갓길에 차를 세우고 차창을 내렸다. “차바퀴 펑크 났습니다. 그렇게 달리면 위험하니 카센터 불러 도움을 청하세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자동차 바퀴의 펑크는 둘째고 트럭에 가득 실은 채소가 더 걱정이었다. 보험회사의 긴급 출동으로 위기를 모면했던 기억이 10여년 전의 일이다. 도움 받은 그 날을 생각하니 은혜로운 두 분의 모습도 떠오른다. 식자재를 실은 트럭에는 배추나 파 등 채소의 부산물이 나뒹굴어 지저분했다. 그런 트럭에 선뜻 올라타던 기성 스님과 희윤 스님, 지근거리에서 늘 엄마와 언니 같은 마음으로 날 다독여주던 두 분을 어찌 잊으랴.

스님은 종종 전화로 나를 부르곤 했다. 오늘 “우리 소풍 가요. 우리 오늘 드라이브해요”라며 깨끗한 승복에 흙이라도 묻을세라 노심초사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님은 맑게 웃고 계셨다. 때론 주인도 모르는 산소에 넙죽 절을 한 후 도시락을 펼쳐 소풍을 즐기기도 하고 쿰쿰한 냄새가 진동하는 식당에서 비지장도 맛나게 먹었다. 스님과 인연을 맺은 후로 나는 그렇게 트럭 드라이브를 하며 지난한 시간을 잊을 수 있었다. 내 삶에 두 분의 스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모습이 아닐까 싶다.

아무에게나 훈수를 두지 않는다. 무관심한 상대에게는 조언도 하지 않는다. 상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비록 불편한 조언도 상대에 대한 작은 관심의 표현이리라. 두 분 스님과 지인들의 아름다운 훈수가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고 있다.

문득 백미러로 바라보니 그녀가 손을 흔들고 있다. 내 훈수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다. 같은 도로에 올라선 그녀의 삶이 무탈하길 고대한다. 불현듯 스님의 목소리가 그립다. 코로나19로 오랜 시간 뵙지 못하고 있다. 봄날에는 팬데믹 상황이 진정돼 두 스님을 모시고 소풍을 하러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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