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호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안전연구소장

▲ 박진호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안전연구소장.

공학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무엇일까? 수많은 의견이 있겠지만, 필자가 전공한 동역학(dynamics) 분야에서는 동역학의 기본요소인 힘과 운동, 더 나아가서 그것의 원천인 에너지를 꼽을 수 있다.

에너지는 열의 발생원 또는 일을 할 수 있는 원천적인 물리량을 뜻한다.

이 에너지에는 흐름이 있어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자연스레 이동한다.

즉 인위적으로 에너지를 가둬놓지 않는 이상, 에너지는 주변의 에너지 수준과 같은 평형상태가 될 때까지 그냥 흘러나가 버린다. 그래서 에너지가 높은 뜨거운 커피잔이 시간이 지나면 주변과 같은 평형상태가 될 때까지 에너지가 새어나가 차가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흐르기 때문에 차가워진 커피잔은 아무리 오랜 시간을 둬도 절대 스스로 뜨거운 커피잔이 되지 못한다.

이것을 에너지의 비가역성이라고 한다. 이 비가역성을 정량적인 수치로 표현한 것이 바로 엔트로피(entropy)이다. 즉 엔트로피는 어떤 현상이 원래 상태로 돌아오기 어려운 정도를 뜻한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말은 원래 상태로 돌아오기 더 어려워졌다는 의미이고, 반대로 엔트로피 증가량이 적다는 것은 외부에서 작은 에너지만 공급해도 원래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뜻이다.

좀 더 비약하면 어떤 물리적 현상이 과거와 동일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가 클수록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다시 커피잔으로 돌아가자. 차가워진 커피잔을 뜨거운 커피잔으로 되돌리려면 반드시 열, 즉 에너지가 필요하다.

커피잔을 가열하면 차가워진 커피잔은 뜨겁게 되돌릴 수 있지만 비가역성을 이겨내기 위해서 새어나간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므로 결국 엔트로피는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지혜로 에너지를 더해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손실되는 에너지를 외부에서 계속 보충해 주어야 하므로, 결국 총량적으로는 엔트로피가 증가하게 되어 완벽한 가역성은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그저 내버려 두기만 해서는 돌이킬 수 없고 예전의 상황으로 돌리려면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필자가 과학기술자인 점을 차치하더라도 어딘가 익숙한 진리이다. 노력 없이 저절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삶의 진리를 과학에서도 확인받는 기분이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과거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이는 있을 수도 기대할 수도 없는 일이다.

지난 2020년은 우리 모두에게 벅찬 한 해였다. 일상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웠다.

사회 전반의 총괄적인 엔트로피가 잔뜩 증가한 모습이다. 그저 가만히 있는 것으로는 원래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없고 예전의 상황으로 돌이키려면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2021년 새해에는 에너지를 모아 비가역성의 벽을 허물고 부디 원래와 가장 가까운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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