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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세상을 떠나자 여태후(呂太后)의 소생인 태자 유영(劉盈)이 제위(帝位)를 계승했지만 나이가 어리고 너무 유약해 모든 정치는 여태후가 도맡아 했다.

이렇게 되자 한나라의 실권은 차츰 그녀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됐다.

유영이 7년 만에 죽으면서 여태후가 황제의 지위를 대신한 8년 동안은 사실상 여황제로 군림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잔혹한 여자로 꼽히는 여태후는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친정 쪽 식구들을 대거 요직에 앉히고 남군과 북군으로 나눠진 병권(兵權)까지 모두 장악해 한나라는 여씨의 천하가 돼 버렸다.

이렇게 됐는데도 한고조 유방의 중신인 진평과 주발, 관영 등은 전혀 실권이 없어 손을 쓸 수가 없었고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 주색에 빠진 척하며 기회를 엿보는 형편이었다.

그 후 8년간이나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르던 여태후가 병으로 죽자 그때부터 숨 숙이고 있던 진평, 주발 등은 구심점을 잃고 힘이 약해진 여씨 일족을 몰아내기로 하고 뿔뿔이 흩어진 옛날 한고조의 세력을 규합했다.

진평의 계교에 의해 주발이 북군의 사령관 인장(印章)을 손에 넣은 뒤 군사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원래 한나라의 주인은 유씨인데 오늘날 여씨 일족이 실권을 잡고 정권을 농락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여씨 따를 자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유씨에게 충성을 맹세할 자는 왼쪽 어깨를 드러내라.(위여씨자우단 위유씨자좌단:爲呂氏者右袒 爲劉氏者左袒)”

그러자 모든 군사들이 왼쪽 어깨를 드러내고 환호하기 시작했다.

사기의 여후(呂后) 본기에서 유래했다. 한나라 고조 유방(劉邦)이 세상을 떠난 뒤 황후인 여후와 그 일족이 실권을 장악해 좌우가 들어가는 성어는 대체로 부정적인 것이 많다.

앞뒤를 재며 결정 못하는 좌고우면(左顧右眄), 분별없이 맞닥뜨리는 좌층우돌(左衝右突), 갈팡질팡 좌왕우왕(左往右往) 등이다.

하지만 좌우봉원(左右逢源)이란 말이 있듯이 어느 쪽에 있어도 근원에서 만나게 되니 대립이 무의미할 것도 같다.

옷소매를 벗어 어깨를 드러내거나(左袒) 오늘 쪽 어깨를 드러내는 것(右袒)은 편을 가를 때 사용하는 말이다.

<국전서예초대작가및전각심사위원장·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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