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영 천안쌍용고등학교장

49만 3433명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이제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자주 변하는 대입제도의 영향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가 필요하지 않은 학생들도 있으니 실제로 고3 학생은 이보다 훨씬 많다. 수능시험 이전부터 소소하게 합격자가 발표되고, 수시·정시·추가모집까지 충원이 연쇄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면 대입 최종 마무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내년 3월 말쯤에 끝난다고 한다.

아직은 예단하기 어렵지만 528명이 응시한 우리 학교 시험장에서는 특이 사항 없이 순조롭게 시험이 치러졌다. 발열 체크, 책상 가림막, 마스크 등 예년에 없던 절차와 장치가 있었음에도 누구 하나 불평도, 실수도 없이 아이들은 잘 해냈다. 참여하신 감독 선생님들과 운영팀도 아이들의 이러한 태도에 칭찬이 이어졌다.

누군가가 오래전에 말했듯이 생태계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존재는 물리적 힘이 세서가 아니라 적응력이 뛰어난 존재이고 그것이 바로 인간이라고 했던 것처럼, 코로나19 감염병 세계적 유행 상황에서도 스펀지 같은 흡수력으로 아이들은 시나브로 완벽하게 변화해서 적응한 것이다. 어쩌면 이런 점에서 교육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여지를 한 번 더 발견했다면 너무 소박한 생각인가.

지난 100일 동안의 생활에서 다시 한번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서 정성을 다하는 작은 것이 어떻게 아이들을 스스로 변하게 하는지 경험할 수 있었다. 어느 학교나 그렇듯이 교문에서의 등교 맞이는 연신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 것이 처음에는 어지럽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살필 수 있는 큰 기쁨이 있기에 계속해 왔다. 마스크가 가린 얼굴에서 볼 수 있는 게 겨우 두 눈뿐이었지만, 그 안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대다수 아이는 핸드폰에 시선이 꽃이거나 반응 없이 지나갔다. 계면쩍음과 쑥스러움을 이겨내며 지내 온 결과 아직도 아무것도 못 본 듯이 지나가는 가는 아이들도 있지만, 눈만 깜박, 고개 까딱, 손 흔들기, 멀리서부터 ‘안녕하세요!’ 외치기, 하이 파이브 하기, 가까이 다가와 허리 숙여 인사하기, 주머니에 따뜻한 핫팩, 우유 넣어 주고 가는 등 자연스럽게 자신을 표현하는 아이들이 확실히 많아졌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것은 그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것과 세상을 ‘확’ 바꾼 산업혁명도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고 거의 200년이 지나서야 세상이 인정했던 것처럼 포기하지 않고, 지지하며 기다려주는 작은 정성이 있으면 된다. 이제 지난 일 년을 정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한 치 앞이 안 보여서 아침저녁 다른 메시지를 아이들에게 날려야 했던 초유의 코로나19 원년을 넘기면서 같은 실수는 두 번 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어느 해보다 더 철저한 평가 분석을 통해 2021년의 계획을 수립하고 모든 힘을 다해 달려야 올해 아이들에게 처음이라 미처 주지 못했던 것들을 조금이나마 더 채워 줄 수 있을 것 같아 각오를 다시 해본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