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규의 서예이야기 424]

당(唐)나라 때 진사시험에 합격하고도 관직을 받지 못한 노장용(盧藏用)이 종남산(終南山)에 입산해 버렸다. 수도 장안(長安)의 근처에 있는 종남산에는 은자(隱者)들이 많기로 소문난 산이었다.

그 시절에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숨어 지내는 은자들에 대해 명리(名利)에 초연하고 학문의 높고 고매한 선비로서 받드는 풍조(風潮)가 있어서 조정(朝廷)에서도 그러한 은자들을 초빙해서 관직에 기용(起用)하는 일이 흔했다. 노장용은 여기에 착안해서 종남산에 입산했던 것이다.

그가 입산해서 은자로 행세한지 오래지 않아 명성을 얻게 됐고 마침내 뜻한 바대로 조정의 고위직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당시 종남산에는 사마승정(司馬承政) 이라는 은자가 있었는데 그는 세상 명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진정한 은자로 이름이 높았다.

조정에서도 여러 차례 높은 벼슬을 내렸으나 그때마다 사양했다.

어느 날 사마승정이 황제의 부름을 받고 하산했다가 다시 관직을 사양하고 돌아가던 길에 노장용이 그를 배웅하게 됐다. 성 문밖까지 함께 걸어 나오다가 노장용이 종남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참으로 정취가 있는 명산(名山)입니다.”

그러자 사마승정이 웃음을 띠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종남산은 그저 벼슬길에 오르는 지름길 일뿐(사환지첩경이: 仕宦之捷徑耳).”

이 말을 들은 노장용은 부끄러움에 입을 다물어 버렸다. 사마승정이 그가 종남산에서 거짓 은자 행세를 해 벼슬을 받은 것을 비꼬았기 때문이다. 이 고사는 신당서(新唐書)의 노장용전(盧藏用傳)과 도교 서적인 ‘역세진선체도통감(曆世眞仙體道通鑑)’ 등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해 종남첩경은 출세의 지름길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또 노장용의 예에서 보듯이 편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풍자하는 말로도 사용되는 성어이다.

<국전서예초대작가및전각심사위원장·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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