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형식 충북본사 부국장

2010년 청원군청을 출입할 때다. 한 직능단체장에게 물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통합 반대 머리띠를 두르시더니, 지금은 왜 통합 찬성 수건을 높이 드시냐”고 말이다. 수장의 의지에 따라 ‘영혼이 없다’는 평을 듣는 공무원을 뺨치는 변신에 진짜 궁금함과 약간의 비꼼도 섞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돌아온 답이 예상 밖이었다. “군수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통합을 추진했다면 우리(직능단체를 비롯한 기득권층)가 군수를 바꿔버리면 된다. 군수 임기 초반에 반대해봐야 교체되는 건 우리다.” 뜻 밖의 대답에 머리에 번개가 쳤다. 이 대화가 행정구역통합을 공부하러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계기가 됐다.

당시 통합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무르익었다. 통합을 공약한 이시종 충북도지사, 한범덕 청주시장, 이종윤 청원군수가 당선됐다. 군의원들도 통합 추진을 약속하고 의회에 입성했다. 청원군의 선거조직을 손에 쥔 변재일 국회의원도 적극적이었고, 여론조사는 여전히 찬성이 앞섰다. 충북도, 청주시, 청원군이 민주당 세상이 됐음에도 MB정부는 강력한 지원을 약속했다. 이런 조건을 갖췄음에도 청주·청원 통합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2012년 행정안전부의 행정구역통합 실무자와 내기를 했다. 전북 전주·완주 통합 여부를 놓고다. 이 실무자는 청주·청원과 마찬가지로 전북도지사와 전주시장, 완주군수가 통합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정부의 지원 의지도 충분하기 때문에 통합이 가능하다고 걸었다. 내 전망은 반대였다. 비록 완주군수가 통합 추진을 공약했어도 기득권층은 통합에 반대할 것이라 판단했다. 또 당시 완주군 국회의원 선거구는 완주·김제였다. 전주·완주가 통합되면 선거구가 쪼개진다. 바닥 선거조직은 국회의원이 장악하고 있다. 완주군민 주민투표가 통과될 수 없다고 봤다. 결과는 부결이었다.

충청권에서도 메가시티 논의가 시작됐다. 충청권 4개 시·도가 20일 제29회 충청권 행정협의회를 열고 메가시티 협력 안건을 다룬다.

교통·통신의 발달과 함께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굳어진 현재의 행정체제는 변화를 줘야 할 시기가 됐다. 인구절벽으로 인한 지자체의 존속 위기는 개편의 에너지를 더욱 키우고 있다.

이런 조건과 광역지방자치단체장들의 굳은 의지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행정구역통합 혹은 메가시티 구성이 쉽지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밖에서 본 통합 분위기와 통합의 당사자가 될 내부의 분위기는 다르다. 권력의 유통기한 조차 변수가 될 정도로 고려사항이 많다. 통합으로 인해 날아갈 수 많은 기관장, 협회장, 민간단체장들이 쉽사리 통합에 찬성할 리 없다.

군불부터 떼야 한다. 통합으로 인해 국가, 지자체, 주민들이 얻게 될 효용이 상실될 기득권 보다 크다는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통합의 긍정적인 효과는 대략 지역균형발전, 규모의 경제 달성, 행정 효율성 상승에 따른 경쟁력 강화, 행정비용 절감을 통한 재정 확보 등이 꼽히고 있다. (통합 된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재정 확보는 효과가 미미했다. 행정의 범위가 커지면서 통합 전 자치단체 예산보다 예산규모가 커졌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관주도 통합 추진도 곤란하다. 가장 강력한 기득권층인 공무원은 통합 후에도 정원을 보장받는다. 없어질 것은 민간단체다. 행정구역이 커지면 기득권층의 발언권도 줄어든다. 피해는 민간이 보는데 자리가 보장된 공무원의 설득이 먹힐 리 없다. 시작은 관 주도가 불가피하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민간파트너가 반드시 필요하다.

행정체제개편 혹은 메가시티 추진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이 근본부터 변화된다. 주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준다. 그럼에도 되돌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치밀한 전략과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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