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공섭 대전동구문화원장

대전의 출발은 대전천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시작 됐지만 대전역의 개설로 대전을 근대 도시로 발전과 교통의 중심지로 발돋움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됐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가 대륙을 침략하기 위한 거점을 만들기 위해 경부선을 1905년 1월1일 개통하며 대전역의 역사는 시작됐다.

철도 개설 당시 수십 호에 불과하던 한밭이라고 불리던 마을이 대전역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대전의 인구가 급증했고 물류가 집중해 근대 상업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또한 1914년 11월 11일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서대전-목포 간 열차가 달리기 시작했고 대전은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로 확고하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대전역은 그 후 눈부시게 발전해 대전에서 서울까지 2시간여 걸리던 것을 고속열차가 개통되면서 40여 분으로 단축해 전국을 한 시간 생활권으로 바꿔 놓았다. 대전역은 희망과 꿈, 그리고 애환이 함께한 105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대전역은 주변에 있는 곰삭은 문화와 계속 도약하며 진화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둔산이라는 신도시가 생기고 모든 기관이 옮겨 가면서 대전을 태동시킨 원도심은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원도심 역세권 경제를 살리기 위해 야구장을 대전역 선상에다 개설해야 원도심도 살고 대전의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을 주장한 사람으로 지금도 아쉬움이 크다. 교통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큰 장점이 있다. 시내버스와 지하철, 국철을 이용하면 교통 혼잡은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KTX를 이용하면 전국에서 접근성이 최고로 좋은 위치이며 경기가 없을 때는 국제적 공연장, 대회장으로 이용할 수 있는 다양성에서도 최고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 경제·문화계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책의 결정은 백년대계를 내다보고 공청회와 토론회, 전문가의 의견과 특히 경제·문화예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지만 절차적 하자가 있는 정책 결정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시민의 불편 등이 뒤따를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책을 변경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다. 관광 도시로 가는 것은 그 속에 얼마나 알찬 문화가 녹아 있느냐가 중요하며 특히 그 지역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관광 상품이라야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할 것이다.

국적 없는 흉상이 목척교를 지키고 있다. 목척교의 정체성은 송두리째 날아가 버리고 콘크리트 무더기가 흉물스럽게 동서를 가로막아놓고 대전천을 외면하고 있다. 목척교(木尺橋)는 대전역과 함께 대전의 정체성을 오롯이 담고 있는 대전을 대표하는 관광자원이다. 지금도 전 국민 애창명곡인 대전역을 상징하는 ‘대전 부르스’와 목척교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못 잊을 대전의 밤’은 대전의 고소한 내음의 곰삭은 문화로 우리 지역의 귀중한 관광문화 자원이다.

필자가 청년 시절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전통 중앙시장내에 위치한 먹자골목에서 맘씨 좋은 주모가 한 바가지 퍼주는 막걸리에 파전 한입이면 최고의 성찬인 시절, 목척교를 어슬렁거리며 가로등 희미한 목척교에 기대서서 못 잊을 대전의 밤을 흥얼거리던 시절이 오버랩 돼 추억을 소환한다. 겨울이면 목척교 아래에서 얼음 지치면서 놀던 추억, 여름에 목척교 아래 대전 천에서 미역 감던 유년이 흑백필름으로 흐른다.

이야기가 담겨있는 관광자원 이여야 진정성을 인정받고 훌륭한 관광지가 되는 것이다. 세계적인 관광지의 자원을 보자.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 캄보디아의 앙코르왓트,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중국의 천안문광장, 체코의 프라하 성, 독일의 브란덴 브르크문 등 오랜 세월 그 지역의 역사를 간직하고 생활 풍습을 함께한 것을 알 수 있다. 자연경관은 지리적 기후적 조건에 의해 자연 생성되는 것이지만 인간에 의해 창조된 건물이나 구축물들은 그 지역의 역사적 시간도 함께하기 때문에 소중한 관광자원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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