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미 청주시 문화예술과

▲ 김소미 청주시 문화예술과.

아기가 28개월이 되니 부쩍 종이나 집안 곳곳에 낙서를 많이 한다. 가구나 마룻바닥에 남겨놓은 것들은 어쩔 수 없이 박박 지우지만, 종이에 남겨놓은 것 중 일부는 모아서 간직하고 있다. 그냥 의미 없는 선과 도형이더라도 후에 이 시기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기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흔히 기록이라 하면 글로 쓰는 행위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재미'라는 것은 그다지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처음 청주시가 '기록문화 창의도시'를 비전으로 문화도시 지정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 '기록'을 주제로 어떤 문화 사업을 할 수 있을까 많은 의심이 있었다.

그러나 시민과 함께 기록의 가치를 찾고, 기록의 다양한 방법들을 고민하고, 기록의 재미를 알아가면서 기록이라는 것이 종이 안에만 존재하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 청주시를 대표하는 즐거운 문화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30일 청주시는 '기록문화 창의도시'를 비전으로 대한민국 첫 법정 문화도시로 지정됐다.

'문화도시'란 지역별 특색 있는 문화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문화 창조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정한 도시를 말한다.

청주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인 세계기록유산 직지가 탄생한 곳이며, 지난 2017년 전국 지자체 최초로 통합 전문 기록관인 청주시 기록관을 개관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는 2022년에는 세계기록을 보존·관리하는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도 문을 연다.

이렇게 청주에는 다른 도시보다 특별한 '기록'이라는 문화자원이 있으며, 지난 6월 9일에는 국가기록원과 함께 대한민국 첫 법정 기록의 날 기념식을 개최하는 등 기록문화를 대표하는 도시로 나아가고 있다.

국가기록원에서는 공공 기록과 민간 중요기록물을 보존·관리하고 있는데, 청주시에서는 일상 기록을 중심으로 시민 주도 문화 사업을 지원하고 문화예술, 관광산업, 나아가 빅 데이터 산업과도 연계해 새로운 경제효과를 창출하고자 한다.

올해부터 문화도시센터를 구성해 3대 전략 18개 사업을 실행하고 있으며, 그중 주목할 만한 사업이 시민 참여형 자율예산제 사업과 동네기록관 조성 사업이다.

시민들이 수동적 참여자가 아닌 문화의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문화도시 시민회의를 운영하고, 문화도시 자율예산제 사업을 통해 시민 스스로 내가 사는 도시와 사회, 주변의 이슈를 해결할 문화 정책과 방안을 직접 기획·제안·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민간이 운영하는 문화 공간을 동네기록관으로 선정해 지원하는데, 올해는 10곳이 선정돼 운영을 준비 중이다. '동네기록관'이란 내가 사는 동네를 기록하고 나와 내 이웃의 삶을 함께 기억하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앞으로 이 공간을 동네 사람들의 기록 아지트로 삼아 공연과 사진, 영상 등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문화도시 청주의 삶과 일상을 기록하며 새로운 기록 공동체를 형성해갈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모인 기록들을 앞으로 만들어질 시민기록관에 보관·전시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려고 한다.

얼마 전 '기록의 쓸모'라는 책을 읽었다. 저자는 모든 기록에는 쓸모가 있으며, 기록을 공유하게 된 계기는 자기가 보고, 듣고, 느낀 기록들이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했다.

"모든 기록은 연결되어 생각의 고리가 됩니다. 5년 전 기록은 오늘의 기록과 결합해 새로운 의미를 낳고, 저의 기록이 누군가의 기록과 이어져 더 나은 생각이 되기도 합니다. 영감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일은 저라는 사람을 깊고 넓게 확장시켰습니다"라는 글에서 기록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시대의 기록자가 돼 평범하고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도시의 일상을 기록하고 그 기록들을 모아 다음 세대를 위한 문화의 씨앗이자 창의적인 유산으로 물려주는 도시! 85만 청주시민이 간직한 어제의 기억이 오늘의 기록이 되고 내일의 문화가 되는 곳, 기록문화 창의도시를 향한 문화도시 청주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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