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주 신양학당 원장

중용中庸을 읽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그 뜻을 禮義문화에 준해서 말하면, 바뀐 시대에 꼰대말 이라고 투덜댄다. 그런데 세대나 시대가 바뀌어도 常道를 이탈하지 말라는 뜻이 中庸이다. "이 시대를 살면서 옛 도를 버리면, 이러한 자는 재앙이 당대에 이른 자다生乎今之世 反古之道 如此者 災及其身者也"라 하지 않는가· 道는 문화다.

사회는 질서안녕을 위한 구성원의 공익적 행동양식의 일정한 기준을 요한다. 당위적 가치를 정의라 한다. 우리 조상은 五倫에서 義를 찾았고 義에 부합시키는 양식인 禮를 守約했다. 수천 년의 역사에서 문화가 오륜정의와 예의 양식에 부합한 시대는 평화를 향유했으니 이른바 夏·殷·周 시대이다. 그 정의를 묵살하고 양식을 어긴 시대는 불안했으니 그 절정이 전국시대이다. 대륙을 통일한 秦나라는 분서갱유로 사회경영 원리를 잃고 짧은 운명을 마쳤지만, 뒤를 이은 漢나라는 다시 유학을 계승하면서 역사를 만든 사실에서도 그 본질을 살필 수 있다.

中庸, 이 뜻을 먼저 설명하자. 中은 "맞게하다" "이탈하지 않게 하다"이고 庸은 常道이니, 일상생활의 지침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中庸'은 "일상생활을 오륜에서 이탈하지 않게", "오륜에 맞게"의 뜻이다. 男女老少의 구성원이 공존안녕 할 수 있는 일정한 규율은 五倫관계의 정의를 잘 살리는 것이다. 孔子_曰 "老人의 여생이 안녕하며, 젊은이의 활동이 신뢰로우며, 그런 질서를 벗어나지 않게 아이들을 끌어안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논어'"라 하심이 그것이다. 사회활동 영역을 벗어난 老人層(노인층), 사회활동의 주역인 청·장년層, 아직 사회로 진입하지 않은 청소년層, 그리고 직책의 고하와 연령의 상하가 동시동처의 생활이니, 여기서 관계의 합당한 균형을 잘 유지함에 안녕이 있으며 그것이 오륜과 禮에 있음을 강조한 말씀이다. 명분과 절차를 지키는 것이다.

常道를 잠시라도 이탈하면 道가 아니란다(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非道也) 아차하는 순간에 달라지는 것이 마음이다. 매사는 마음에서 비롯되니, 자기만 아는 마음동태를 노출되기 전에 살펴서 삼가 하란다(莫見乎隱 莫顯乎微 愼其獨也). 보이거나 들리지 않지만 순간에 드러나며, 습관화로 굳어진 심기는 숨기려 해도 드러난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양심을, 어기는 속임으로 쓰지 말라 한다(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잠시 해이한 마음에 사심이 들면 常道의 균형을 잃기 쉬움을 경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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