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수필가

산골의 밤은 일찍 찾아온다.

멀지않은 곳에서부터 점점 어둠이 물들어오더니 순식간 그 안에 나를 가두고 말았다. 사위를 좁혀오는 칠흑 같은 어둠속에 혼자 있는 순간이 아늑한 품속에 든 양 오히려 포근한 느낌이다.

산골에서는 빨리 내리는 어둠도 고즈넉해서 좋다. 산골의 밤 풍경에 스며드니 출렁대던 감성 또한 차분히 젖어든다.

모든 것을 밀어놓고 무작정 떠나와 맞이하는 느긋한 밤이다.

도심에서의 저녁은 재깍대며 돌아가는 초침소리에 눈을 맞추고 동동거리며 하루의 마무리에 급급했던 것이 일상이었다. 내 삶을 주어진 시간 안에서 조화를 이뤄가는 것이 아니고 동분서주하며 시간에 등 떠밀린 기계처럼 살아 왔던 것 같다. 그런 탓에 늘 마음은 불안하고 이루지 못한 하루의 목표는 잠자리에 들어서도 부담으로 옥죄어오곤 했었다.

수십년 동안 화려한 전등 아래서 어둠은 무조건 밀어내야하는 존재라 여기며 살아왔다. 불빛을 향해 무작정 달려가는 불나방처럼 어둠을 피해 무조건 달아나다보니 무모하게 부딪치고 깨어지는 날도 많았다.

산골의 한적한 밤 자락을 느리게 걸어본다. 가슴깊이 침잠되어있던 원초적 감성의 촉수들이 하나 둘 깨어나 어둠속에서도 다시 출렁인다.

불빛 하나없고 사람의 재잘거리는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을 때 철저하게 혼자인 이 시간의 고독이 성스럽기만하다. 혼자 떨어져 자신에만 의지하게 되니 나의 존재 또한 가히 귀하게 느껴진다.

서늘한 가을바람에 향긋한 솔 내음이 코끝을 스친다. 숨을 크게 들이쉰 후 몸을 뒤로 제키고 기지개를 펴며 하늘을 보았다.

아! 밤에도 하늘이 있었구나.

화려하지만 눈부시지 않고 아름답지만 고혹하지는 않은 별무리가 곱디 곱다.

칠흑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산골의 밤하늘은 이토록 아름다운 빛을 내며 어둠 안에서도 또 하나의 별 천지를 이루고 있었다. 별들의 무리가 천지에 깔리고 사방에서 반짝이고 있었지만 왜 이제껏 어둠속에서 별이 더욱 빛나고 있음을 깨우치지 못하고 살았을까. 밤하늘은 늘 한가득 별을 품고 세상을 향해 내 머리위에서 고고한 빛을 내리고 있었는데….

세상의 화려한 불빛만 좆아 숨차게 달려 가려했던 외골수 삶의 방식이 외눈박이가 되어 한쪽 눈을 흐리게 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별빛이 은가루처럼 곳곳에 내리는 느긋하고 고즈넉한 산골의 밤이 진정 낮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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