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전배 천안예술의전당 관장

지난해 말 기준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국내 공연장은 1062곳(공연법에 따른 객석 100석 이상), 문예회관은 255곳(공연·전시 등 다양한 문화프로그램 운영)이 있다.

이러한 공연장과 문예회관의 명칭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보다 한층 더 은풍하다.

국내에선 1987년 현대적 고품격 클래식극장의 본격적 막이 열렸다. 예술의전당(서울)은 공연 콘텐츠, 극장 시설, 관객 서비스 완성도를 높여가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하우스마다 오페라극장, 콘서트홀, 리사이트홀, 자유소극장으로 명명했는가 하면 IBK챔버홀, CJ토월극장처럼 시설 기증 기업명을 붙이는 뚜렷한 차별성을 갖췄다.

이후 전국적으로 공연 프리미엄 브랜드를 표방하는 ‘지명+예술의전당’ 형태의 지역극장명이 속출했다. 대전·청주·경주·천안예술의전당 등 대형 극장이 ‘藝術의殿堂’ 명칭을 바탕으로 전국 주요 도시에서 개관했다.

한편 다소 결이 다른 국립극장은 우주 기운을 담으려 했는지 달오름극장, 별오름극장, 해오름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 등으로 명명했다. 이밖에 동숭동엔 대학로예술극장, 아르코예술극장, 샘터파랑새극장, 바탕골소극장, 학전소극장, 연우소극장, 창조소극장 등 기념비적 연극공간이 즐비하다.

고양시는 별모래극장, 꽃메야외극장, 아람극장, 새라새극장을 품었다. 구리시는 코스모스대극장, 유채꽃소극장이라는 이름을 지녔다. 이처럼 평범함을 탈피한 독특한 극장명은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 묘한 끌림이 있다.

뉴욕 카네기홀처럼 인명 뒤에 홀이 붙은 예도 많다. 호암아트홀은 기업인의 별호(別號)가 극장 명으로 사용된 사례다. 2014 평창동계올림픽 빙상 경기도시 강릉 공연장은 지역 출신 율곡 어머니의 호 사임당(師任堂) 홀로 오픈했다. 정심화홀은 이복순(법명 정심화) 여사가 충남대학교에 기증한 대중공연 공간이다. 대전연정국악원은 연정(燕亭) 임연수 선생의 국악사랑이 고스란히 담긴 전문화된 연주공간이다. 금호아트홀이나 LG아트센터처럼 아트홀과 아트센터도 꽤 많이 사용되는 편이다.

반면 지방자치단체의 공연장 이름은 00 문예회관이 상당히 많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예(文藝)는 문학(Literature)이라는 뜻이 우선이다.

文學과 예술(Literature and arts)이라는 의미도 포함한다. 또 文化와 예술의 문예(The arts)로도 풀이된다.

이름은 내포된 의미를 표현하는 직관적 단어가 중요하다. 극장 시설 리모델링은 물론 개명(改名)도 쉽지 않다는 사실은 문화예술 관계자들에겐 이미 반복적으로 학습된 경험이기도 하다. 원, 관, 회관, 홀, 센터, 공연장, 전당, 극장 이밖에 어느 것이라도 좋은 선택 대상이다. 극장은 지역민이 애착을 가질 때 이름과 함께 완성되어 가는 문화적 특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이참에 우리 충청권 소재 대기업들의 사회공헌사업으로 지역에 극장을 지어주는 기업문화 후원을 적극 권한다. 기업명을 극장 이름에 내세워도 당당하다. 기업의 지속 가능한 존재가치를 아낌없이 보여줄 수 있는 확실한 기회다.

과거 르네상스 시대 메디치(Medici) 家의 명예가 간단(間斷) 없이 세세에 전승돼 온 것을 인류가 기억한다. 지금도 그들의 정신을 높이 기리고 있다. 시공의 한계를 뛰어넘는-영원한 예술처럼-기업들의 문화 메세나(Mecenat)는 시대를 초월해 칭찬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