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연 충남저출산극복사회연대회의 위원 및 충남도여성정책개발원 선임연구위원

몇 해 전 독일의 어느 지하철 승강장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된 포스터가 오랫동안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포스터 속 한 남성은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고, 그가 입고 있던 티셔츠에는 인상적인 문구가 적혀 있었다.

티셔츠에는 ‘뮤지션, 마술사, 중재자, 철학가, 골키퍼, 제빵사,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되고 싶다면 유치원 선생님이 되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정말 다양하고 많은 역할을 요구하기 때문에 아이를 돌보는 주체를 반드시 특정 성별(gender)로 고정시킬 필요가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오랜 기간 '아이를 돌보고 양육하는 일이 여성에게 적합하다'라는 통념을 생산해왔으며 그리하여 '돌봄은 여성의 몫'이라며 당연시해 왔다.

이러한 성별고정 관념이 빚어낸 독박육아의 현실은 경력단절이라는 불안 속에서 여성들이 출산을 엄두도 낼 수 없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유럽의 OECD 국가들은 일찍부터 아빠 육아휴직 제도로 대표되는 성평등한 돌봄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왔다.

그 결과 스웨덴 등 유럽 내 곳곳의 일상에서 '라떼파파(lattepapa)'를 자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라떼파파는 한 손에는 카페라떼(커피)를 들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육아하는 아빠의 모습을 일컫는 말로 스웨덴에서 유래한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하는 육아 문화가 자리 잡은 스웨덴은 일찍이 여성 인력 활용의 중요성을 깨닫고 세계 최초로 부모 공동 육아휴직제도를 도입하였다.

이러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사회 인식과 조직 및 기업의 문화를 바꾸었다.

OECD자료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부모는 자녀와 매일 151분을 함께 보낸다. 이 중 아빠는 신체적 돌봄으로 28분, 가르치고, 책 읽고, 놀아주는 시간 19분으로 총 47분을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엄마는 104분을 자녀와 매일 시간을 보낸다.

반면 우리나라는 자녀가 부모와 매일 함께 보내는 시간이 48분이며, 특히 아빠는 신체적 돌봄 3분, 놀아주고, 가르치고, 책 읽어주기 3분으로 총 6분에 불과하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92명이었으며 올해 2분기 출산율은 0.84명으로 출생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6월 한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실시한 20~30대 직장인 조사 결과 응답자의 33.7%가 '향후 자녀를 낳을 생각이 없다'라고 응답하였다.

우리사회 전반에 저출생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가 낳고 있는 중차대한 과제에 즉답을 찾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대응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 사회는 돌봄의 성평등한 분담, 남성의 육아 참여 확대와 일가정 양립 문화의 확산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초보아빠들에게 육아 비법을 전수하기 위한 '100인의 아빠단' 구성, 남성의 맞춤형 육아휴직 정보제공을 위한 통합포털 플랫폼 '아빠넷' 구축, '아빠육아휴직 보너스제' 도입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들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얼마잖아 우리 동네 곳곳에서 많은 라떼파파들과 따뜻한 인사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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