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광역시 브랜드 슬로건 사진=대전광역시청
대전광역시 브랜드 슬로건. 사진=대전광역시청

작년 초 개봉한 영화 '말모이'는 독특한 작품이었다. 우리말 우리글의 수난사를 적절한 픽션을 가미하여 인상 깊게 그려냈다. '감동과 즐거움'이라는 교과서적인 예술의 사명에 충실했다. 286만 명을 동원하여 흥행 면에서 다소 아쉬운 느낌이 있지만 이런 소재로도 재미와 교양을 고루 갖춘 극영화가 관객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간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점에서 기억할 만하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말모이'란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을 지칭하는데 주시경 선생 등이 1910년 경 조선 광문사에서 편찬하다가 발간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민족문화사에 기록될 위업이었다. 일제강점기 혹독한 탄압과 가증스러운 말살 공작 속에서도 존속, 전통을 이어 지금 우리가 자유롭게 쓰는 모국어가 되었다는 사실에 경건함을 느낀다.

온·오프라인 상에 난무하는 우리말의 오용, 변형, 훼손과 파괴가 나날이 심각해지고 과도한 축약어와 정체불명 외국어의 무분별한 혼용으로 지금 국어의 혼란은 심각하다. 더구나 우리말의 숨결과 리듬을 온전히 살리면서 지역의 고유한 정서와 역사, 전통을 담고 있는 감칠맛 나는 사투리의 소멸위기는 우려할 만하다. 태생적 사투리 전문가인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고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사라질 몇 십 년 후에는 우리나라 사투리도 함께 멸실되지 않을까 싶다. 지역 각급학교나 기관단체에서는 문화의 보물단지인 향토방언을 가르치거나 보존하는데 관심이 적다. TV 등 매스컴에서 그간 웃음과 비하의 대상으로 희화화 되었던 사투리마저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한글날에 즈음하여 전국 지역 색채와 사투리를 담은 연극축제 형식의 '말모이 연극제'가 작년부터 개최되고 있다(올해는 9.28∼10.25). 경기, 강원, 전라 경상, 충청, 제주 그리고 북한 부문에 8개 극단이 참여한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지역 브랜드 슬로건에 직·간접으로 방언을 도입하는 등 아직은 미미하지만 긍정적인 움직임은 고무적이다. 'It's Daejeon(잇츠 대전)'이라는 영어문구를 오래 써온 대전광역시가 공모형식으로 지난달 'Daejeon is U'라는 새로운 슬로건으로 바꾸었다. 지역주민이 도시의 주체라는 진부한 의미부여는 그렇다 치더라도 조금 빨리 발음하면 '대전이쥬'라는 충청도 사투리로 읽히는 동음이의가 주목할 만 하다. 기왕 사투리로 지역정체성을 특화하려면 '대전이쥬'를 앞으로 올리고 영어표기를 부연하는 과감한 설정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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