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역사유람 98] 왕도 꺾지 못한 도미부인 정절
보령지방 전설
개로왕, 무리한 요구 뒤 도미 두눈 적출
도미부인 불러 동침 요구했지만 도망쳐
삼국사기
왕으로 가장한 신하 겁탈시도에 기지발휘
개로왕, 도미 눈 빼낸 뒤 부인 왕궁에 압송
도미부인, 핑계대며 시간 끌다가 탈출 성공
남편 만나 사랑지키며 살았다는 결말 동일

▲ 도미부인사당. 보령시 제공

[충청투데이] 얼마나 도미 부인이 아름다웠으면 우리 최고의 역사서 '삼국사기'에 까지 그 이름이 올랐을까?

얼마나 예뻤으면 임금의 정신을 흔들어 놓았을까?

백제시대 지금의 보령시 청소면에 도미라는 목수가 살고 있었다. 정직하고 성실한 젊은이였다. 그리고 그 부인은 매우 아름다워 널리 소문이 날 정도였다.

백제시대 보령에는 군사용 말을 기르는 사육장이 있어 가끔 왕이 이곳에 들리기도 했다.

그런 어느 날 백제 21대 개로왕(455-475재위)이 이곳에 왔다가 도미 부인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왕은 그 부인을 보자마자 한 눈에 반해 음욕을 품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도미를 불러다 일을 하나 맡기며 반드시 기일을 지켜야 한다고 엄명을 내렸다. 그 일이란 마구간을 짓는 것이었다. 필요한 자재도 주지 않고 이런 엄명을 내리는 것은 빤 한 속셈이 있었다.

결국 도미는 정해진 시간 안에 마구간을 짓지 못하자 왕은 가혹한 벌을 내렸다. 도미의 두 눈을 뺀 다음 조각배에 태워 바다위에 띄운 것이다.

▲ 도미부인 경모제.  보령시 제공
▲ 도미부인 경모제. 보령시 제공

그런 다음 왕은 도미의 부인을 불러 '네 남편은 죄를 짓고 멀리 없어 졌으니 왕궁에서 살자'며 동침을 요구했다.

이에 도미 부인은 태연히 왕의 요구를 들어 주는 척하며 시간을 끌다가 마침내 왕의 침실을 빠져 나와 바다를 향해 도망쳤다. 그리고 버려진 배 한척을 발견하고 그것에 몸을 맡겼다.

도미 부인의 조각배는 조류에 떠밀려 어떤 섬에 도착했는데 그곳에는 남편도 도착해 있어 감격의 재회를 했고 고구려로 망명하여 살았다는 것이 보령지방의 전설이다.

지금도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는 도미 부인의 영정을 봉안하고 그 절개를 기리는 정절각이 있고 보령시 오천면 교성리에는 도미항이 있는데 도미가 살던 포구로 전해져 오고 있다.

그런데 '삼국사기'에서는 보령 지방에 존재하는 내용과 조금 다르게 도미 부인을 기술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개로왕은 도미 부인이 아름답고 정조 바른 여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신하를 왕으로 변장시켜 도미의 집에 보낸다. 도미는 집에 없고 도미 부인 혼자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왕으로 가장한 신하는 도미 부인에게 달려들어 겁탈을 하려고 했다.

그러자 도미 부인은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오면서 방에 켰던 불을 껐다. 그리고 여종을 대신 침실로 들여보냈다. 하지만 가짜 도미 부인임이 밝혀져 도미 부인은 체포되어 왕궁으로 압송되었다. 그리고 개로왕은 도미의 눈을 뺀 다음 배를 띄워 멀리 보내고 그 부인을 궁녀로 삼아 거처를 마련해 주면서 그날 밤 그녀를 범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혜가 뛰어난 도미 부인은 이런 저런 핑계로 시간을 끌다가 마침내 왕궁을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바다 포구에 이르러 통곡을 하고 있는데 어디 선가 조각배 한척이 그녀 앞에 떠내려 왔다. 그녀는 이배를 타고 정처 없이 바다에 떠돌아다니다 천성도라는 섬에 도착한다. 여기서 남편 도미를 극적으로 만나 고구려로 망명하여 살았다. 눈 먼 남편의 눈이 되어 주고 한 평생 변치 않는 부부 사랑을 지키며 산 도미 부인은 그래서 삼국사기에 기재된 유일한 '정절의 여인'이 되었다.

이처럼 보령 지방에 전해 오는 도미 부인의 설화와 삼국사기 기사와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목숨을 걸고 지켜 낸 부부 사랑의 가치를 기리는 데는 다름이 없다. 그래서 도미 부인은 충청의 여인상을 대표하고 있다.

보령에 있는 도미 부인의 정절각(貞節閣)은 언제나 우리 가슴을 아련하게 한다. <충남복지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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