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숙 대전가양중 교장

책상과 컴퓨터 소독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일상이 된 지 여러 달이 지났다. 덕분에 책상 위 석부작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나 한참 후에나 아침 인사를 나눈다. 올해 우리 학교에 발령받은 네 분의 신규 선생님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다. 교단을 떠날 날이 머지않은 내가, 교직에 대한 부푼 꿈을 갖고 이제 막 첫걸음을 시작하는 그들에게 어떤 귀한 말로 격려를 해줘야 할지 내심 많은 고민을 했다. 돌이켜보면, 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학생들과의 만남만으로도 즐겁게 시작한 교직생활이었다. 그저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초심과는 달리 학생들의 말에 정성껏 귀 기울여주지 못하고 그들을 맘껏 품어주지도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교감, 교장이 되어서도 뭔가 채워지지 않았다는 아쉬움으로 스스로를 책망하기도 했다.

신규 선생님들에게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은지 물었다. ‘함께 성장하는 교사’, ‘학생들의 잠재력을 이끌어줄 수 있는 교사’, ‘진로설정에 도움이 돼 기억에 남는 교사’,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사’ 등 다소 추상적이었던 나의 교사상에 비해 그들은 매우 구체적인 초심을 갖고 있었다. 물론 다 중요하기도 하고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우선순위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가장 어려운가?

개인의 삶은 물론 좋은 선생님으로서의 성공적인 목표를 성취하는데 무엇이 가장 어려울까?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다. 배움은 물론 취미생활도, 운동도, 사람과의 관계도 다 마찬가지다. 일관된 마음으로 꾸준히 실천하기가 참으로 어렵고 그 여부에 따라 성패가 달려있다. 다른 직업과 달리 교단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가지는 초심의 중심에는 당연히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이 믿고 존경하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 아마 모든 선생님들의 첫째 바람이며 그야말로 좋은 선생님이 아닐까 생각한다. 초심이 퇴색되지 않도록 어제를 돌아보면서 마음가짐을 다독이고 정성과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다 보면 언젠가는 ‘꾸준히’가 돼 있지 않을까? 아버지 박목월과의 추석에 얽힌 박동규님의 추억담을 읽은 적이 있다. 낡은 옷을 입고 매일 대학 강단에 서는 아버지가, 연구실에서 공부만 하는 조교였던 아들에게 새 양복을 맞추어주신 이야기였는데, 아버지의 그 마음을 가슴에 담아 표현한 말이 생각난다. ‘귀한 것을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의미를 가치로 바꿀 수 있다.’ 우리 모두 참으로 어려운 언택트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많은 시간을 마스크에 가려진 눈빛으로 소통하는 귀한 아이들을 보면서 소소한 일상의 가치를 깨닫는 하루에 또 하루를 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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