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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의 4대 황제 인종(仁宗)은 훌륭한 인재를 널리 구해 등용하고 학문과 문화를 진흥시키는 데 힘을 기울여 당시 조정에는 한기(韓琦), 구양수(歐陽脩), 범중엄(范仲淹), 사마광(司馬光)등 지금까지도 이름이 빛나는 걸출한 인물들이 황제를 보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의 재능이 너무 출중하다 보니 명론탁설(名論卓說)이 많아서 조정은 항상 논쟁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두 개의 정파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게 되면서 많은 폐단을 일으켰다.

이 강직하기로 이름난 두연(杜衍)이 재상(宰相)에 올랐다.

당시의 관례는 황제가 일일이 신하들과 의논하지 않고 인사문제를 처리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두연은 그런 관례는 관직의 기강을 흐리게 한다는 이유를 들어 황제의 인사 명령서를 받으며 그대로 뒀다가 수십 통이 쌓이면 황제에게 되돌려 보내 버렸다.

아무리 재상이라 해도 두연의 행동은 임금의 뜻을 꺾는 무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느 날 두연의 반대파 구양수가 입궐하자 그에게 두연의 월권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으면서 조정안의 여론이 들끊기 시작했다.

이 무렵 두연의 사위 소순흠(蘇舜欽)의 부정 사실을 적발하고도 두연의 위세에 눌려 처리를 못하던 어사대 왕공진(王拱辰)에게도 이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힘을 얻은 왕공진이 소순흠을 잡아 족치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연루자가 체포되었는데 그 중에는 두연의 일가친척이 여러 명이나 끼어 있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재상이 된지 고작 두 달여 만에 실각(失脚)하고 말았다.

그 뒤 왕공진이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자랑스레 말했다.

“내가 도적놈들을 그물 하나로 모조리 때려잡았다(일망타진:一網打盡).”

일망타진은 그물을 한 번 쳐서 물고기를 모조리 잡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범죄자를 한꺼번에 모조리 잡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불철주야 각계 업무 분들과 경찰들이 도둑과 마약, 폭력 등 흉악범들을 일망타진해 사회의 질서를 바로 잡아 안전한 생활을 유지하도록 항시 노고가 매우 크다.

고마움을 기리기 위해 ‘경찰의 날’이 10월 21일에 정해졌 듯 치안 유지에 깊이 감사드린다.

우리는 언제나 밝고 안정된 사회가 되도록 모든 일에서 긍정적으로 최선을 다해보자.

<국전서예초대작가및전각심사위원장·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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