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백설기를 나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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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백설기를 나누다
  • 충청투데이
  • 승인 2020년 10월 15일 19시 30분
  • 지면게재일 2020년 10월 16일 금요일
  •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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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영 쌍용고등학교장

막내 동생이 태어났을 때 나는 초등학교 학생이었다. 산후조리를 도와주러 오셨던 외할머니께서 큰 걱정을 하시면서 일주일 만에 외갓집으로 가신 후 엄마의 크고 작은 일을 도왔다. 엄마의 설명을 듣고 가마솥에 밥을 하거나 연탄불에 미역국을 끓였다. 대문에 걸려있던 삼줄이 풀리는 세이레가 되자 엄마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학교에서 돌아온 나에게 쌀 함지박을 주시며 방앗간에 가서 빻아오라고 하셨다. 영문을 모르던 나는 특별한 날에나 먹는 떡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에 기다림이 길게 느껴졌다.

시루번을 때는 엄마를 보고 이제는 먹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엄마는 시루를 번쩍 들고 장독대로 향하는 것이었다. 어느새 준비하셨는지 장독대에는 물이 가득 든 작은 항아리 곁에 촛불이 빛나고 있었다. 그 앞에 서서 무엇이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연신 손바닥을 비비며 절을 하는 엄마의 모습은 이웃집 언니를 따라 주일학교를 열심히 다니던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앗! 우리 엄마도 미신을 믿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저 떡을 먹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어질 때 엄마는 조용히 내 손을 이끌고 부엌으로 돌아와 작은 접시와 쟁반을 챙기셨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엄마는 가마솥에 그 항아리 물로 저녁밥을 지으셨고 나는 바빠졌다.

내가 살던 곳은 산성 아래 마을로 신작로를 중심으로 위·아랫마을로 나누어졌는데 어림잡아 30여 호나 되는 제법 큰 마을이었다. 오밀조밀 붙어 있어도 그 모든 집에 새하얀 백설기를 한 덩이씩 돌리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더군다나 엄마가 주신 메시지를 일일이 전달하고 어르신들이 주시는 말씀도 들어야 했고 가끔은 돈, 실타래, 아기 옷을 주시는 분도 있었는데 그것을 받아오는 것이 싫었다. 그 일을 일곱이레까지 하고 마쳤다.

우리 아이들은 오늘부터 50일이 되는 날 수능시험을 본다. 마지막까지 아이들 버팀목이 되어 주자고 선생님들께 작은 백설기를 돌려야겠다.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수능이 전부는 아닌데 전부인 것처럼 되어버린 현실을 개선해야 할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면서 지금부터 그 제도를 바꾸는 데 적극 앞장서고, 아이들을 위해 작지만, 그 무엇보다 따뜻한 마음과 정성을 모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계획대로 이루어 낼 수 있는 동력 지원해주는 일 또한 그 어느 해 보더 더 절실하다.

새 생명의 탄생을 온 마을에 알리고 함께 보호하기 위해 삼줄을 만들고, 장차 이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해야 한다는 책무성을 깨워주는 일곱이레 백설기 나누기가 지금의 충남교육청이 실천하고 있는 마을교육공동체의 출발점이 아닐까 싶다.

2021학년도 400여 명의 신입생이 오는 날 정성으로 백설기를 만들고 손편지를 써서 학교 주변 동네 주민들을 찾아가 학교 밖 선생님이 되어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우자고 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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