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태 대전 서구청장

스웨덴 항구 도시 말뫼는 1970년대까지 스웨덴 조선 산업의 상징이었다. 도시에는 사람과 돈이 넘쳐났다.

그러던 말뫼는 1980년대부터 조선업의 경쟁력이 약화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마침 북유럽에는 경제 위기의 한파까지 몰아쳤다. 폐업하는 조선소가 줄을 이었고 골리앗 크레인은 단돈 1달러에 팔렸다.

말뫼 시민들은 떠나는 크레인을 보며 오열했고 스웨덴 국영방송은 이 장면을 장송곡과 함께 내보냈다. 지금도 회자하는 ‘말뫼의 눈물’이다.

스페인 빌바오는 유럽의 대표적인 공업 도시였다. 중세시대부터 철강을 생산했고 산업혁명시대 이곳에서 만든 철강 제품은 유럽 전역으로 수출됐다.

1980년대부터 철강 산업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자 ‘철의 도시’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실업률은 20~30%까지 치솟았고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를 떠났다.

전형적인 산촌(山村)인 일본의 가미야마도 비슷하다. 한때 2만 명이 넘던 인구는 2015년 5300명으로 줄었다. 20년 동안 인구가 4분의 1로 감소하고 저출산·고령화도 심각했다.

일본에서 20번째로 소멸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꼽혔다. 쇠락하는 도시를 살리기 위해 지방정부와 지역민이 나섰다.

말뫼는 IT와 디자인 중심의 첨단도시로 변모했다. 스타트업이 몰려들면서 6만여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지방정부가 나서 대학을 유치하고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시행한 결과다.

빌바오 역시 공업 도시에서 세계적인 문화예술 도시로 탈바꿈했다. 시와 주 정부, 시민단체는 1990년대부터 도시의 체질을 바꾸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소멸하던 가미야마도 1990년대 중반부터 사람과 기업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조금 더 재미있는 마을을 만들기 위한 지역민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지방자치제도가 발전한 국가라는 점이다. 주력 산업의 몰락, 글로벌 경제 위기 등은 불가항력적인 변수(變數)다. 하지만 도시 재생과 변화가 지역민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상수(常數)다.

물론 의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하고 그것이 전통과 역사가 되어야 한다.

선진국의 쇠락하던 여러 도시가 회생할 수 있었던 비결은 우리 손으로 재생시키겠다는 지역민의 강력한 의지와 이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굳건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오는 29일은 지방자치의 날이다. 10월 29일로 정한 이유는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승리로, 그해 지방자치 부활을 위한 헌법을 개정한 날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이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균형 발전과 혁신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침체된 지방의 지속가능한 발전 역시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을 통해 가능하다. 스웨덴 말뫼, 스페인 빌바오, 일본 가미야마의 사례가 그것을 입증한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아직 온전하지 못하다. 지방정부가 아니고 지방자치단체로 불린다.

관련 법안은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기 어렵다. 비록 지방자치의 날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고 성대한 행사도 없지만, 한 번쯤 자치와 분권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선진국이어서 자치분권을 한 게 아니다.

자치분권을 해야 선진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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